친구가 딱 나라며 나 같은 사람이라고 읽어보라고 보내줬다.
내가 가장 이해 못 하겠는 것이,
상대의 반응 즉 눈치를 보면서 자기 행동과 태도를 늘 바꿔대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유형은 정작 "자기"가 없다. 늘 남의 시선과 반응에 따라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다가 잘 대해주면 만만하게 보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볍게 선을 넘는다.
나는 두루뭉술하게 경계를 지우며 거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른 채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모토로 사는 사람이 태반인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동창회, 동문회, 동호회 이런 거 질색이다. 기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나가본 적도 들어간 적도 없다. 결국 나 같은 사람은 한국 특유의 관계지향적 사회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에 어울리는 유형이었겠지만 지금까지 잘 피해 살아왔다.
하지만 사적 관계 개인적인 사이에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수년 동안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거듭하며 나만의 노하우, 생존법을 찾아냈다. 덕분에 지금까지 체면이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불편한 모임이 일절 없고, 내 주변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나는 거리를 두고 마음속에서 차분히 정리한다.
기호와 취향의 다름과 성격과 성향의 차이는 문제 삼지 않는다. 각자 서로 다른 것이니 상대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 간 또는 타인과의 관계, 개인과 사회에서의 거리 감각과 예의 태도 등등.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기준의 허용치 한계치가 명확하다. 그 선을 함부로 (알고 넘어오든 모르고 넘어오든) 넘어오는 사람을 싫어하고 멀리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 선을 깰까 봐 경계한다.
나 역시 그 선이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뒤에 그어져 있는데 평상시에는 잘 드러내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오해를 하거나 자기 편한 대로 착각을 한다. 초면부터 선을 넘는 이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마음속으로 조용히 줄을 그어 버린다.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다.
기싸움이니 사랑싸움이니 피곤하다. 매우 귀찮다. 그런 짓을 해서 이겨 먹고 서열을 세우거나 경쟁심리와 질투 그리고 시기심을 조장하고 열받게 해서 상대의 감정을 확인해야만 깊어진다고 착각하는 관계라면,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관계라면,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 기력 소모를 할 바에야 끝내버리는 게 더 낫다. 단기적으로는 상처일 수도 손해일 수도 있겠지만 더 길게 보면 내 일상과 멘털에 실질적으로 더 유익하다.
우유부단한 성향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세계,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는 것 보다 관계를 잃는 것이 더 두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단호하지 못하고 박절하게 대하지도 못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친밀감이라는 감정을 ‘동기화’와 착각하는 듯하다. 같이 울고 불고 웃고 고함치고 싸우고 뭐든 맞장구치고 얼씨구나 공감을 해줘야 이심전심 찰떡궁합인 줄 안다. 때로는 이해불가능한 경우에도 무조건적 공감을 요구하면서. 이해도 동의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공감을 하라는 건지......
거칠게 말하면 공감 테러범들.
'네 의견에는 관심 없으니 지금 내가 하는 얘기나 잘 새겨들어, 닥치고 내 말 들어, 잔말 말고 내 편 들어! '라는 식의 태도. 친하다, 가깝다고 생각하면 할 말 못 할 말을 줄줄이 늘어놓고, 친분과 친밀함을 핑계로 무례해진다. 닥치고 공감해 달라는 사람들을 보면 공감을 강요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 자기감정에만 취해 타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다. 가까워지거나 친해지면 날 좋아하면 ‘무조건 내 편 들어줘- 공감해 줘'라는 사람이나 남 얘기나 늘어놓고 불평하고 남 탓 하고 남 흉보는 사람들을 보면..... 귀에서 피날 거 같다. 이 사람 딴 데 가서도 똑같겠구나. 거기서도 이런 식으로 내 이야기를 하겠구나 싶다. 말 쉽게 하는 사람과 말 섞고 싶지 않다. 그럴 때 굳이 듣고 싶지도 않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을 때 내가 만든 선은 거리두기 - 통화 사절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친밀함을 중요시하고 정이 많은 건 미덕이지만 역으로 지나치게 관계에 연연하는 건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다르다고 선을 그으면 자신을 싫어한다고 착각해서 쉽게 상처받거나 공감해 주면 너랑 나랑 하나다라며 오버하고 오지랖을 부리는 것도 어쩌면 '동질성'으로 관계의 온도를 측정하는 한국인 특유의 '습'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맥락(눈치보기)이 발달한 관계지향적 한국사회의 이면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사람 생김새가 다 다른 건 생각을 담는 그릇도 다 다르다는
뜻일 텐데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르면 남과 다르면 생각이 가치관이 다르면 별종 취급한다. 피로하다. 뭐든 관계를 최우선 순위로 두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남 애기에 골몰하고 남의 시선으로 자기를 세우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공감해줘야 하는 것. 대단히 피로하다. 때로는 관계를 끊었는데도 상대는 눈치 없이 끊길 줄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하니 일상이 아주 조용하고 평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