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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작아지고 비워지며 가볍게

by 홍재희 Hong Jaehee



주말에 어머니댁에 들렸다. 어머니는 작은 임대 아파트에 사신다. 집이 비좁으니 세간살이를 줄여야 한다고 내 물건을 정리하라 하셨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이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당신의 자식들이 하나둘 집을 떠난 후에도, 어머니 당신만은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같은 곳에 둥지를 틀었다. 재개발로 동네를 밀어서고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임대 아파트에 어머니는 당신의 말년을 의탁했다. 어머니는 아마도 이 집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잠시 희미한 현기증을 느낀다.

과거 내가 태어난 집과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보냈던 동네 위에 세워진 신기루 같은 아파트 단지.

나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 너머의 것들을 알고 있다.

아파트 외벽이 서 있는 자리에 과거 무엇이 있었는지를.

아파트 정문이 들어선 곳에 그 옛날 얼마나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서 있었는지를.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내 유년 시절의 시간과 공간을 깡그리 삭제해 버린 이 아파트단지는 내게 너무도 낯설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나는 고향'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나는 이토록 볼썽사나운 아파트 단지를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으로 여겨야 할 것인가.


아이러니다. 쓰게 웃을 수밖에.


태어나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이 오래된 동네를 그나마 고향처럼 여겼는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송두리째 남김없이.

고향마을이 댐으로 수몰된 실향민이 된 기분이다. 물 대신 아파트에 수몰된 것만 다를 뿐.

서울 태생의 아스팔트 키드인 나는 고향이랄 게 없다.

내게는 어머니가 고향이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나면 서울 어디에도 고향은 없을 것이다.

그저 세상 어디든 내가 선택한 곳이 내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어머니는 말년에 재개발로 반평생을 살았던 자기 집을 잃고 이제는 월세를 내고 사는 삶을 살고 있다. 당신이 신변을 정리하고 살림을 줄이기 시작한 것은 재개발이 확정되고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다음부터였다. 어머니는 첫 번째로 피아노를 없애버렸다. 당신이 꿈꾼 자식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아름답고 완벽한 가정을 상징한 악기 그리고 내 어린 시절 단짝동무이자 추억이었던 피아노를 이웃집 아이에게 줘버린 것이다.


피아노가 우리 집에서 떠나간 그날 아침.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울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차마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가늘게 들썩이던 당신의 어깨와 허옇게 새어버린 당신의 흰머리가 서글퍼졌다. 당신의 평생 꿈이 산산조각 나 한 줌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세월을, 기구한 인생을 한탄하며 울먹이던 늙은 여자, 한 사람이 외로이 거기 있었다.


어머니는 늙은이가 살림이 많으면 당신이 세상을 뜬 후 짐을 치워야 하는 자식들에게 민폐라 하신다. 어머니 댁을 방문할 때마다 집 안에 무언가가 줄고 비어 간다. 볼 때마다 키가 한 뼘씩 줄어가는 당신처럼 어머니는 당신이 세상에 존재한 흔적마저 서서히 조금씩 지우고 있는 중이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채비를 하는 어머니. 그 생각에 미치니 불현듯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작아지고 비워지며 가벼워지는 어머니.

아아, 나도 어머니를 본받고 싶다.




나도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미련이 없다. 어머니 당신이야 뒷정리를 해줄 자식이 있지만 나야 혼자일 터이니 그마저도 남기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선다. 법정 스님처럼 바랑 하나와 입던 옷가지 한 벌만 남기고 갈 도력까지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줄이고 줄이며 살고 싶다. 사실 사는 데는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쓸데없이 지니고 있는 것이 소유한 것이 너무 많다. 긴요하지도 않은 물건이 왜 이리 많은 걸까. 아직도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인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책에 욕심이 많았다. 그 욕심만큼은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책 욕심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지금 있는 책만으로도 책장이 차고 넘친다. 예전에는 나무가 보이는 창이 난 서재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책으로 빼곡한 서재 있는 집에서 살다가 늙어 죽고 싶었다. 그런데 그 꿈도 내려놓았다. 언제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르는 셋집살이를 하면서 책을 무한정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산다는 것은 대책 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사할 때마다 넘쳐나는 책 때문에 이삿짐을 나르며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부터 책을 사서 쟁여놓는 짓을 주저하게 되었다.


수천수만 권의 장서가 들어찬 서재에서 책 냄새를 맡으며 음악을 듣고 창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이제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으로 간다. 글 쓰고 책을 낸 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모순이지만 요즘은 어지간이 꽂히지 않고서는 책을 잘 사지 않는다. 인터넷 도서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만 수십 여 권이다. 사고 싶어도 한 번은 꾹 참는다. 그렇게 조심하는데도 어느샌가 책이 늘어나 있다. 그나마 예전처럼 마구 사 대지 않아서 그게 다행일까.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닥치는 대로 빌려온다. 빌려온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 책이라는 생각에 영혼이 보름달처럼 차오른다. 책만 읽어도 배가 부르다.


지난번에도 어머니댁에 들려서 내 물건을 치웠는데 이번에는 책을 모조리 치웠다. 그래도 여전히 만화책을 비롯한 카메라 등등. 책장 하나가 남아있다. 오래전 사서 읽고 모았던 손 때 묻은 낡은 책을 노끈에 꽁꽁 묶는다. 리본을 매니 마치 선물 같다. 이렇게 또 내 지나간 이십 대와 작별한다. 누군가에게 아니면 파지로 생을 마감할 내 책들에게.


과거는 안녕. 떠나보낸다.

잘 가거라. 젊은 날이여. 안녕.


책을 내 다 버리고 오니 어머니가 명랑하게 영정 사진을 만들어 오라 하신다.

아버지에 이어 이제 어머니다.

문득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찍었던 그날이 겹친다.

순간 가슴에 바람이 훅 스쳐 지나간다.

매번 영정 사진을 까먹지 말라고 거듭 신신당부하는 어머니.

그런데 난 왜 영정 사진을 만들면 엄마가 훌쩍 가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자꾸 까먹어요. 엄마가 떠날 시간을 늦추고 늦추고 싶어서.

알아요. 그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는 걸.

잊지 않았어요. 어머니. 그건 저와의 약속이니까요.

다음에 올 때는 꼭. 잊지 마.

제일 고운 사진으로 준비할게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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