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얼굴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내 고향은 어디인가를 문득문득 자문할 때가 있다.
시골에서 산골에서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산과 들과 바다가 푸른 숲과 나지막한 마을이 또는 덜 붐비고 덜 복잡하고 덜 큰 소도시가 정겨운 사투리가 오가는 거리와 이웃들이 즉각적으로 눈앞에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의 풍경이겠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추억하는 고향은 내게 향수가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언제나 모르는 이들과 떠나고 오고 가는 사람들과 이웃하고 살았던 나는 그와 같은 고향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결코 체화할 수는 없다. 내게 그 고향은 경험의 산물이지 기억의 산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기억이란 그가 살아온 삶과 경험과 이야기의 총체이다. 기억은 존재를 구성한다. 따라서 그가 고향이라 기억하는 공간이 그 사람의 뿌리이자 원형인 것. 이런 의미에서 내게도 고향이란 존재한다. 없기도 하지만 있기도 하다.
항상 바뀌고 지워지고 버려지고 없어지고 새로 들어서고 생기는 신기루 같은 도시 서울. 정주하지 못하고 단지 거주하는 공간인 서울. 그럼에도 서울은 내게 여전히 '고향'인가?
서울이란 공간을 내 삶의 지주이자 정체로 여기고 살면서도 서울 안에는 지금까지 태어나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 지역이 너무도 많다. 한강 남쪽은 일 때문이 아니면 다리도 건너가길 싫어하는 강북키드로 자란 탓에 강서구 양천구 영등포구 마천구 강동구 강남구 같은 이름은 내게 묘한 낯설음마저 불러일으킨다.
인구 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에서 고향이라는 두 글자에 내가 떠올리는 공간은 이런 곳.
구불구불 휘돌아 가는 골목길. 남루하고 지저분한 뒷골목. 겹겹이 집을 쌓아 올린 달동네. 산자락 아래 뒤엉킨 전깃줄. 한 뼘 공터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 올망졸망 어깨를 맞댄 화분. 높이 솟은 축대 아래로 담쟁이가 담장 나머로 멋들어진 향나무 장원수가 늘어선 이층 양옥 주택이. 길목 계단 아래에 모여앉아 가위바위보를 하는 초등학교 꼬꼬마들. 부자 옆에 빈자가 살고 고층 빌딩 아래 쓰러져 가는 건물이 주택 옆에 판잣집이 빌라 옆에 옥탑이 이웃하며 그리는 아기자기한 풍경. 가난이 봄처럼 화사한 꽃으로 피어난 곳.
내게는 이곳이 서울 속 내 고향. 내가 사랑하는 서울. 나는 이곳에서 엄마 뱃속 같은 평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