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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병실 생활

by 홍재희 Hong Jaehee



1. 웃음 제조기 안성댁.



안성댁은 한 달 전 척추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 부위를 긁어대다가 꼬맨 부위에 염증이 생기고 물이 차서 재입원을 했다. 살짝 치매가 온 안성댁은 가끔 가다 당신이 얼마 전 수술한 것도 잊고 병상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 앉는다. 보조기 없이는 침대에서 절대로 일어나 앉으면 안된다는 금칙도 안성댁에게는 쇠 귀에 경읽기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으려 왔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으려고 할머니의 팔을 잡으니 팔 베고 누운 할머니 왈,


-괜찮아. 아무데나 놔.


주사를 아무데나 놓으라는 말에 다들 빵 터졌다.


- 안돼요. 아무데나 놓을 순 없지. 그런데 할머니 고향이 충청도에요?

- 아니유. 안성 토박이유.

- 아휴. 정신 말짱하시구나.

- 그럼유. 안성 00번지 XX에 살아요.

- 아이쿠, 집 주소를 대놓고 말하면 어떻해요? 누가 찾아가면 어쩌려고요?

-누가 와요? 그래요 놀러와요! 아무데나 놔요.


우리 병실의 웃음 자판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안성에서 온 할머니, 안성댁. 79살 할머니가 입만 열면 병실은 웃음 바다가 된다. 안성댁이 입만 열면 개그 본능을 감추지 못하고 병실 사람들을 웃겨줄 때마다 그가 밤마다 수술한 부위를 자꾸 긁어대는 통에 말리는 간병인과 실랑이를 벌여 잠을 설치게 하고 간병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벌떡 벌떡 일어나서 온 병실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간호사가 안성댁에게 물었다.


-우리 할머니 오늘 방귀 뽕뽕 했나?

-아니 나 아직 뽕뽕 안했어.


뽕뽕..... 뽕뽕. 두 단어에 크흑, 뿜었다. 79살 치매 있는 할매와 서른 안팎 간호사 사이에서 오고 가는 사랑스러운 대화다. 전신 마취 수술 환자는 3일 간 금식을 한다. 그 사이 방귀가 나오면 대장이 마취에서 풀려 활동을 시작한다는 증거다. 그러면 미음부터 시작해서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수술 직후부터 날마다 간호사가 들려서 던지는 질문이 가스 나왔어요? 방귀 뽕 했어요?



안성댁은 오늘 아침 침대에 두 팔이 꽁꽁 묶여 있었다. 수술한 뒷허리를 하도 긁어대는 통에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간병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옆에 앉아 있어도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몰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곤 했다. 심지어 이 잔망스런 할머니는 간병인에게 아유, 저게 뭐유? 하면서 시선을 돌리게 한 후 냉큼 등짝을 긁어댔다. 반대편에 앉아있는 내 눈에는 할머니가 꼼수를 쓰는 걸 본 게 벌써 몇 번인지 몰랐다.


안성댁이 간병인을 부른다.


- 아가씨. 아가씨. 나 좀 봐유.


60대 간병인이 대꾸한다.


- 에이, 내가 무슨 아가씨에요? 아줌마지.

- 그래유? 그럼 미안해요.


안성댁은 냉큼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를 한다. 안성댁은 사과도 빠르다. 그러고는 간호사를 향해 냅다 소리친다.


- 아가씨! 아가씨!


병실 문을 나서다 말고 간호사가 피식 웃으면서 돌아섰다.


-할머니이~~~ 저 아가씨 아네요.


안성댁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가씨 아녀유? 아이구 그럼 미안혀유. 아가씨면 어때유. 괜찮아유.

-할머니. 말 안 들으면 또 꽁꽁 묶어놓을 거에요. 할머니 아들이 어머니가 또 그러면 저보고 묶어도 된다고 했어요. 알았죠?

-알았슈. 미안해유.


1초도 주저 없이 냉큼 대답하는 안성댁. 다시 병실에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하여간 안성댁 때문에 매일이 시트콤이다. 어느날은 자신이 재수술을 했다고 하고 어느 날은 내가 수술을 했어요? 라고 묻는다. 어제는 집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안성댁은 오늘은 미용실에 왔다고 큰소리를 쳤다.


안성댁의 레이다가 이번엔 옆 자리에 누운 80세 양여사에게 꽂혔다. 안성댁이 고개를 돌려 양여사에게 물었다.


- 내 나이가 어때서유? 나이는 별 거 없어유. 안그래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맞어. 내 나이가 어때서.

- 그래유? 그럼 우리 오빠를 얻어드릴까?


사랑하시라고 당신의 오빠를 던져 주겠다는 말에 양여사가 손사래를 쳤다. 둘의 대화에 눈물을 빼며 웃던 간병인이 안성댁에게 반문했다.


- 아니 할매, 할매 나이가 몇인데 오빠는 돌아가셨지 않아?

- 맞아유. 우리 오빠는 이미 돌아갔어요. 그럼 우리 아들은 어때요?

다시 빵 터졌다.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농담을 던진다. 에이 아들은 좀 그렇지. 이 나이에 어케 아들이랑 사귀냐. 할매 아들은 너무 늙었자나. 그랬더니 안성댁이 발끈해서 대꾸한다.

- 울 아들이 서른 셋인데! 내가 아들 셋이 있는데! 아들은 다 소용 없어유.


할머니의 말은 항상 반전이 있다.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은 다 잊은 듯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부리는 안성댁. 그러면 안성댁의 귀여운 거짓말에 다들 넘어가는 척 해준다. 안성댁이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 나, 나, 내 나이가 어때서~~~

이번엔 안성댁과 양여사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 내가 양띠유.


귀가 살짝 멀은 양여사가 반색한다.


- 나랑 같네. 나도 양씨유.

- 아이쿠. 나랑 같네유. 하하하하.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데도 대화는 술술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는 짹짹 깍깍 삐리리 삐리리 구구구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며 함께 지저귀는 새소리 같다. 안성댁은 껄껄껄 호방하고 호탕하게 웃는다. 양 여사는 허허허 점잖게 웃는다. 나는 할머니들의 대화를 듣다가 키득키득 웃음을 참다가 깔깔깔 배꼽을 잡는다.


안성댁은 젊은 날 시원시원하고 거침 없는 쿨한 성격이었으리라. 젊어서 뭐했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또 딴소릴 한다. 나유? 나야 그냥 시골에서 밭 메고 농사 짓고 살았쥬. 그럴 리가. 할머니는 그냥 농사만 지은 게 아닐거다. 마을 부녀회장 쯤은 기본이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반장 스타일. 남편 없이 아들 셋을 혼자 키워냈다는 싱글맘 안성댁은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용감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안성댁은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어깨도 넓고 곧고 팔 다리가 튼튼하고 길죽하다. 척추 수술은 한 환자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벌떡 일어나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안성댁이 김연경 같은 배구 선수가 되어 네트를 가르며 공을 내려꽂는 상상을 해본다. 잠 안자고 떼 쓰는 밤에는 짜증나고 얄밉다가도 이렇게 즐겁게 모든 이들을 웃게 해주는 안성댁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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