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계절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동무들 사이에서 얼레리꼴레리라고 장난치고 놀려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뜻을 알고 썼던 사람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은 표준어 '알나리깔나리'라는 말이 변형된 것이다. '작은'을 뜻하는 접두사 알-과 지체 높은 사람 벼슬아치를 뜻하는 '나리'가 합성된 말. 즉 '알나리깔나리'는 나이 어린 작은 사람이 벼슬아치가 되었다는 소리. 뭣도 모르는 미성숙한 애가 감투를 썼다고 놀리는 말이다. 물정 모르는 어린애가 권세를 쥐었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안 봐도 훤하다.
우리말의 얼은 마음, 꼴은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을 뜻한다. 얼빠진 놈이란 말은 어리석은 사람 정신 나간 사람이란 뜻이고 꼴값 떤다는 말은 분수를 모르고 격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마음을 챙기지 않고 몸만 챙기는 시대다.
사람이 몸을 챙길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밥이다. 옛날에는 밥만 챙기는 사람을 밥보라 했다. 밥보에서 ㅂ 탈락으로 바보가 되었다. 그러니까 바보는 즉 제 몸만 밥만 챙기는 사람이다. 몸을 치장하고 꾸미고 가꾸고 먹는 데에만 치중하는 건 곧 스스로 바보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바보일 것이다. 이렇게 살면, 꾸미고 먹고 쓰는 데에만 드는 돈을 버느라 서로 늘 경쟁해야 하고 경쟁을 하면서도 늘 밀려날까 잃어버릴까 뒤처질까 노심초사 긴장하고 불안해진다. 그러면 사는 게 피곤해진다. 인생이 피곤해진다. 이처럼 정신없는 (얼빠진) 인생, 꼴값 떠는(겉모습에만 치중하는)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왜 사는지를 까먹게 된다. 그리고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자신이 탐하던 부와 성공을 거머 줬다 하더라도 늙고 병들면 소용없다.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생전에 제아무리 권세와 위세를 떨치던 사람도 죽으면 그만이다. 언제나 그 사람을 대신할 대체가능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나 하나 사라진다고 세계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는 계속되며 시간은 지속된다. 결국 종국에는 이렇게 사라져 갈 뿐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그 진실을 뼛속들이 깨우칠 때면 이미 때는 늦었고 마지막을 예감하는 슬픔만 남을 것이다. 후회로 회한으로 가득 찬 삶.
그게 바보의 삶이다.
바보처럼 살지 않으려면 돈 버는 기계로 살다 죽지 않으려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지 않으려면 늙어서 죽는 순간에 한 점 후회가 없으려면 살면서 살아있을 때 몸보다 마음을 다스리고 챙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챙기는 공부. 첫째 독서다. 둘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자기 성찰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마음에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욕심만 가득한 사람에게는 이 또한 공염불이다.
욕심이 가득하면 제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욕심은 변하는 마음이고 본심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모든 번민은 제 욕심과 본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지금 자신의 마음이 욕망이 변하는 마음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면 된다. 그때 변하는 마음이 확인되면 욕심, 변하지 않은 마음이면 본심이다. 본심으로 살아야 잘 사는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 살기가 쉽지는 않다.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이 비웃음을 당하고 도리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
여름한철 내내 들뜬 얼과 꼴을 다스리기 딱 좋은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