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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간병 생활 1

by 홍재희 Hong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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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간병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간병인들과 가까워진다.


6인 병실 기준으로 했을 때 평균 환자 2 명이 가족 보호자 간병이고 나머지 4인은 간병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작년에는 3인이 보호자 간병이었는데 올해는 6인실에 나 혼자였다.


간병 노동자는 한국인 간병인도 있지만 중국교포가 대다수인데 주로 60-70대 여성들이다. 간혹 50대가 있고 드물게 러시아 교포도, 남자 환자를 돌보는 남성 간병인이 있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을 병상에서 일으키고 앉히고 휠체어를 밀고 당기고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육체노동뿐이면 다행이라. 가뜩이나 병중이라 예민하고 까칠한 노인들의 기분까지 헤아려야 한다.


육체노동에 감정노동까지 쉬운 일이 아니다. 몸집이 작고 마른 환자라면 모를까. 덩치가 있거나 남자 환자를 돌보는 여성 간병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워서 마음이 짠하다. 울 어머니는 왜소한 노인인데도 목욕을 시키고 나면 기진맥진했다. 내가 이럴진대 간병인들은 오죽할까. 그때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은 간병 노동자들이 새삼 우러러 보였다.


노인환자가 다수인 병동에 있다 보니 별별 노인군상을 된다. 꼴불견인 노인들을 보면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또는 저렇게 늙으면 어쩌나 하고 겁이 덜컥 날 때도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한 환자도 있고, 성격이 지랄 같은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가 있으면 병실에서 24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도 고역이다. 성질머리가 개떡 같은 환자의 비위를 맞추는 간병인들을 지켜보노라면 간병이라는 돌봄 노동은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없는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간병인들 중에는 남편 자식 등 본인의 가족을 간병하다가 간병 노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도 많다.


어느 환자는 간병인이 일 초라도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어디 갔냐 불러대고 쉴 새 없이 찾아댔다. 간병인이 잠시도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봤다. 또 다른 환자는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전화로 제 가족에게 간병인 흉을 보기도 했다. 가족들이 싸 보낸 음식을 간병인과 나누지 않고 제 혼자 먹는 환자도 있었다. 간병인에게 반말은 기본이요 욕지거리를 하는 환자도 보았다. 못났다. 정말 못났다.


나와 상관관계가 없는 모르는 타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됨됨이가 더 잘 드러난다. 가족이거나 친구 등 알고 지내는 가까운 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면서 남에게는 무례한 이들이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이 보인다. 상스럽고 후지다. 간병인을 하인 부리듯 대하는 막돼먹은 환자들을 보면 나이 든다고 늙어서 자연스레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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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들과 친해지면서 일하면서 겪는 갖가지 애환에 대해 듣는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어요?

배운 거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이 나이에 내가 돈 벌 수 있는 일이 어디 있나?


70살이 된 중국교포 여성 간병 노동자의 말.


경력이 단절된 여성 또는 중년 노년 여성이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삶의 사이클.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돌봄 노동이 없으면 전국의 병원은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돌봄 노동을 전적으로 여성의 역할 또는 책임으로 개인에게 전가하고, 여성이 전담하는 돌봄 노동의 값을 후려쳐, 여성을 착취해서 굴러가는 대한민국 자본주의 시스템.


내가 이 일을 십 년 했는데 이젠 몸이 아파서 더 못하겠어.

안 아픈 데가 없거든. 딱 일 년만 더하고 그만두려고.


여성 간병인들 중에 손목 팔목 허리에 파스를 안 붙인 사람이 별로 없다. 간병하다가 골병든다는 말이 실감 난다. 아픈 환자를 돌보다 본인이 디스크 수술을 한 간병인도 있다. 한두 가지 병을 달고 있지 않은 간병인이 드물다.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간병인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말이야. 이거 해서 중국에 집 샀어. 아들 녀석 결혼도 시키고 집도 사줬고.

한국에서 이 고생을 하면서 안 아픈 데가 없으시다면서요.

아니 자식한테 무슨 집까지 사줘요? 제가 알아서 먹고살아야지!


그 말에 나는 안타까운면서도 화가 나고 슬프고 속상했다.


아니지. 그래도 자식인데 부모가 해줘야지. 울 남편도 놀고 있는데..... 내가 일할 수 있을 때 벌어서 해줄 수 있으니까 다행이지.


대한민국이든 중국에 살고 있든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제 몸을 불살라서라도 모든 걸 희생한다는 이 세대의 한국인들. 어머니라는 이름에 제 인생을 남김없이 먹혀버리는 여성들. 순간 나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산란을 하고 장렬히 생을 마감하는 연어를 떠올렸다.


3.


해 질 녘. 병실을 나서다 우연히 마주친 장면.

간병인이 나직이 노래를 부르고 환자는 복도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환자와 간병인의 관계는 저 노을처럼 서로에게 스며드는 사이가 아닐까.



병실의 인간군상을 보면서 다시금 일깨우는 교훈.


ㅡ 타인에게 친절하라. 인격적으로 대접받고 싶으면 무조건 친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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