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병원밥과 병실 체질

슬기로운 병실 생활 5

by 홍재희 Hong Jaehee



2022년 1월 5일


이년 전 입원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방문객을 철저히제한했었는데 지금은 그같은 강도높은 제한조치는 없어져서 환자도 수액 트레이를 끌고 병원 앞 편의점 카페에도 잠시 나갈 수 있다. 입원시 코로나 검사를 하는 것과 외부인 방문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말고는 예전으로 돌아왔다. TV에도 종종 나오는 유명의사가 이번주 내내 휴가라서 외래 진료를 안 본다 한다. 그래서 환자가 줄어서인지 병동 안이 조용하다.


병실 안은 더없이 한적하고 쾌적하다. 24시간 상주보호자가 필요한 환자 빼고는 환자들은 혼자서 조용히 병실에 머문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녀야한다는 불편이 있지만 이 정도쯤이야. 코로나가 아니었음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풍경일터. 사실 하루가 멀다하고 방문객들로 시장바닥 같이 어수선한 과거의 병실이 아니어서 더 좋다.



며칠 전 한 친구가 필요한 거나 도와줄 것이 없느냐며 병문안을 오겠다 했다. 그네의 친절한 배려 걱정하는 고운 마음은 십분 알지만 괜찮다고 불편하다고 사양했다. 신경써야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내게는 위로나 위안이 되는 게 아니라 바닥난 에너지를 끌어 올려 상대를 위해 써야하는 ‘일‘이다.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집중하느라 기를 모아야하는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된다. 아플 때는 더도 말고 오롯이 혼자 있고 싶다. 내면으로 조용히 침잠하고 싶다. 뭐 대단히 아픈 것도 아니고 죽을병도 아니고 가족도 오지 말라 했는데 무슨.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즉문즉답하는 내게 서운하지 않기를 빈다.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에게 일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틀만 말미를 달라고 요청하고 일을 마치면 곧장 입원하겠다 했다. 의사는 지난번처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응급으로 어지럼증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주사액을 삼십 분 동안 맞고 병원을 나섰다. 나 같이 우겨대고 사정하는 환자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이석증이란 게 생명의 촉각을 요하는 병이 아닌 탓인지 의사도 내 고집을 꺾진 않았다.


병실에서 지낼 모든 채비를 하고 짐을 캐리어에 떄려넣고 입원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따로 없었다.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늘게 된 이점이 뭐가 있냐 하면 병실 생활에 나름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작년 (벌써 작년이 되었구나!) 초여름부터 가을 문턱까지 병원에서 상주보호자로 어머니 간병을 했을 때도 여러모로 슬기로운 병실 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던 경험을 살려서. 병실 생활엔 어느 정도 이골이 나서 말이지. 뭣보다 짐을 꾸려 제 발로 입원할 정도로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 몸 상태가 최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그저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주변에 병원 가는 걸 끔찍이 싫어하거나 병원 자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나는 병원이 친근하고 친숙하다. 주사 맞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며 징징거리는 사람도 있는데 내 경우엔 주사 맞는 거나 약 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병원밥이 맛없다고 입맛 떨어진다고 불평하는 환자들 천지다. 그런데 난 병원밥도 먹을 만하다. 맛있다. 오히려 병실에서 꼬박꼬박 세끼를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잔다. 상황에 바뀌면 상황 탓을 하기보다 있는 대로 주어진 대로 곧잘 적응하는 편이다. 어차피 벌어진 일 병에 걸렸다면 주어진 단 한 가지 조건이라면 불평할 시간이 아깝다. 뭐 최악의 상황은 아니잖은가.


아프고 나면 병증을 통과하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생에 대한 감각이 확연히 달라진다. 두 발로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똑바로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지극한 행운이 아닌가. 너무나 쉽게 어이없이 죽을 수 있는 게 단 한 번에 삶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인데 사람들은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기 전까지 그 자명한 사실을 망각한다. '살아있음'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어리석다. 어리석으니 또 사람이다.




입원하던 날 병원비를 고려하여 5인실을 달라했지만 만실이란다. 기다리면 4인실을 배정해주겠다 해서 점심 먹고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입원 전의 귀한 시간을 살뜰하게 보냈다. 두시간 기다린 끝에 4인실 당첨. 내가 머물고 있는 4인용 병실엔 89세 원인불명 어지럼증 환자와 69세 이석증 환자, 84세 파킨슨병 환자가 있다. 파킨슨병 환자만 두 딸이 번갈아 가면서 간병을 한다. 이번엔 나만 빼고 세 환자가 모두 매일 두 번씩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번과 같이 여기서도 나는 최연소 환자가 되었다. 할머니들의 관심과 애정 공세를 동시에 받는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돌봄노동으로 평생 다져진 이 늙은 여자들은 다짜고짜 오지랖이 디폴트인 듯 하다. 나이 결혼 자식 여부를 꼬치꼬치 깨묻고 훈수를 둘 때는 더없이 성가시지만 그래도 여자들은 늙어도 재밌다. 아니 늙을수록 나이테가 멋지다.

병원에 있다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병실을 오가는 사람들이 내겐 호기심의 대상이다. 사람들만 지켜봐도 하루가 심심하지 않다. 나는 병상에 누워 때로는 병실과 복도와 화장실을 오가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러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재밌다. 그네들의 성격, 가치관, 배경,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병원 밖을 만나면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지도 모르는 인연들이지만 냐게 주어진 이 시간만큼 나는 이들이 흘러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작은 옹달샘같던 이야기는졸졸 흐르는 시내가 되고 너른 강물이 되고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이 여성들이 미주알고주알 풀어놓는 수다는 병실 구석구석에 이야기로 포도 넝쿨을 만든다. 병실 안에서 한 인간의 생이 그가 살아온 서사가 선연히 펼쳐진다. 환자마다 저마다의 굴곡진 삶이 있다.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불행하고 전화위복이었다가 새옹지마로 끝나는, 그리고 아직은 죽음이라는 엔딩에 이르지 않은 삶에 대하여. 이들이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에는 '한국에서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와 사랑과 슬픔, 만남과 이별, 행운과 불운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엮였다가 풀리기를 반복한다. 어느 누구 하나 완벽하게 행복하지도 완벽하게 불행하게 산 이도 없다.


원인불명인 만성 어지럼증 환자, 황해도 평양 출신인 실향민 여성 89세 강정O씨는 호방하게 껄껄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남은 인생에 일 없다. 더 뭘 바래.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안 칸? 남은 생은 덤이야 덤. 원래 태어난 거 자체가 덤인 거였다우."​


쓸모 없는 인생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의 생이란 세상에 태어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인생이라는 긴 긴 여정이 산맥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그 산을 넘고 넘어 갖은 고비를 넘어 깊고 푸른 광대한 바다에 이르는 것. 길고 짧은 건 지금 대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돌이켜 후회하지 않을 것만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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