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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달의 기억

슬기로운 병실 일기 4

by 홍재희 Hong Jaehee


한 달 동안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깨달은 것.



1.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도 하고 병상에 누워도 보고 휠체어도 타고 목발도 짚고 재활도 하니까 그전에는 한 번도 안 해봤던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여기 소인과 유인이 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났다고 치자. 감기든 뭐든 간에. 그 사람이 왜 감기에 걸렸다면 소인과 유인이 다 갖추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인은 그 사람이 원래 허약한 체질이었다 아니면 잠을 못 자서 과로해서 그때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유인이라는 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걸 말한다. 소인이 없는 경우에는 같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한들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내 경우 소인은 타고나길 원체 뼈나 인대가 튼튼하진 않았다. 유인은 술 마시고 술에 취해 쪼리 신은채 물이 흥건한 미끄러운 바닥에 자빠졌다겠지.


수술 후 관절경 사진을 보여준 의사왈, 특히 연골 손상은 단지 이번 사고 때문만은 아니란다. 지속적으로 서서히 손상을 입은 경우라고. 운동선수 출신도 아니고. 운동이란 걸 한 적도 없는데 이런 경우는 장시간 과도하게 걷거나 오래 서 있거나 무거운 걸 운반하거나 해서 무릎에 심한 하중을 주거나 여하튼 오랜 시간이 걸려 망가진 경우란다.


순간 흠칫! 했다.


평상시엔 운동도 안 하면서 십여 년 이상 일 이년에 한 번씩은 배낭여행을 떠나 방랑자처럼 고행자처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평균 여덟 시간을 죽어라 걸어 다니고 비포장 흙길을 날마다 자전거로 미친 듯이 싸돌아다닌 게 생각났다. 나 자신을 너무 밀어붙였다. 힘들수록 괴로울수록 더욱 더 몸을 혹사시켰다. 마치 그 길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마냥. 쯧쯧... 내가 무슨 스무 살도 아니고 너무 과신한 거야. 나잇값도 못하고.... 과유불급. 중용. 나이 드니 이런 말이 실감 난다 하더이다. 이제 더는 삶 앞에 까불지 말라고 자중하라고 몸이 경고 신호를 보내는구나.



더 이상 젊지도 않고 아직 늙지도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딱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내 몸은 나빠질 일만 남았다 하는. 몸이 튼튼해서 그저 젊어서 몸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산 게 지금까지의 내 삶이었구나. 앞으로는 뭔가 잃어버릴 일만 남았겠구나. 한 번 다치면 다치지 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상처는 흔적을 남는다. 빼도 박도 못한다. 몸으로 알겠다. 몸이 통증으로 병으로 가르쳐야 그제야 알아차리니....



어리석다. 참 어리석게 살았다. 나이 들어도 마음만은 그대로 청춘이란 말, 아주 위험한 헛소리. 다들 그러고 싶은 희망사항일 뿐. 몸은 안 따라주는데(평소에 운동도 자기 관리도 안 하면서)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만 믿고 따라가다간 골병든다.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정신 승리하느니 몸이 전하는 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게 차라리 낫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하는 소리가 아니라 몸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뼈 아픈 각성. 씁쓸한 긍정.



사진을 들여다보니 나름 로보캅 다리 같다. 멋진 걸. 무릎 보조기를 사랑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석 달 뒤 보조기와 이별할 때쯤 난 좀 슬플 지도 몰라. 퇴원하면서 간호사들이 가져간다는 내 깁스도 우겨서 기념으로 챙겨 왔다. 집에 모셔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봐주리라. 이 날을 사고를 아픈 몸을 기억하기 위해서.







2.



사람이 오랫동안 혼자 있게 되면 뜻밖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이걸 저걸 무얼 해야지 하는 결심이 아니라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러고 있더라는 식으로 말이다.


입원한 동안 정말이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창밖으로 하루 하늘이 변하는 모양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것. 햇살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 그러고 있지 않으면 줄구장창 책만 읽고 또 읽었다. 아니 정신을 차려보니 계속 책을 손에 들고 있더라가 맞을 것이다. 마치 병원이 아니라 도서관에 와있는 것처럼. 가져온 책을 다 읽고 나니 읽을 게 없었다. 뭐 읽을 책 없나 했는데. 다행히도 이 병원에는 환자들을 위해 복도 한쪽에 책을 구비해 놓았다. 만화책과 베스트셀러 대중소설. 퇴원하기 전까지 시간 때우기에 최적. 심심할 틈이 없었다. 병상에서도 나는 전 세계 어디로든 어떤 시대로든 날아갈 수 있었다. 내가 하도 책에만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까 회진 돌 때마다 의사가 궁금한 듯 신기한 듯 물었다. 이번엔 또 뭘 읽나요?



아마도 병상에서 내 독서는 지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지구가 망한 뒤에 혼자 살아남게 될 사람이 조바심을 내는 거와 비슷했을 거다. 무언가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러지 않으면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닐 것 같은, 살아있는 게 아닐 것 같은 조바심 같은 것. 바로 그 것.



C.S. 루이스가 말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라고.


맞다. 병상에서 나도 그랬다.



3.


굳이 병원에 있어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아플 때는 그냥 철저히 혼자라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건 외롭다는 뜻이 아니다. 아플 때는 그냥 그런 기분인 것이다. 옆에 누가 있건 없건 철저히 혼자라는. 원래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고통은 사랑만큼 쉽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더욱이 그게 육체적 고통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통에 대한 사색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오롯이 스스로와 대면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삶을 되돌아보며 삶을 재조정 재배치하게 된다는 점에서.



누구나 크게 아파보면 깨닫는다. 아플 때 죽을 때 사람은 정말 평등하게 혼자라는 것. 잘난 놈도 못난 놈도 부자도 빈자도 그 누구도 고독은 피해 갈 수 없다는 것. 아프면 알 게 된다. 배우자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본질적인 고독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다. 아파서 가족한테 미안한 것도 뒷전이다. 아프면 외롭고 괴롭다. 제 몸 아픈 건 그 누구도 모른다. 아픈 사람만 안다. 아픈 놈만 서럽다. 그러니 감상에 빠질 거 없이 닥치고 빨리 회복하는 것밖에 없다. 아프면 사랑도 사치다. 내가 안 아파야 남을 사랑할 여력이 힘이 생긴다. 가장 이타적인 사람은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 말은 자기를 먼저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타인을 사랑하고 돌볼 마음의 여유가 진정한 포용력이 너그러움이 생긴다는 뜻이다.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사람만이 남도 지켜줄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게 남에게 민폐를 덜 끼치는 일이다.


아프고 다치고 재활을 하면서 생각한 것. 내 몸을 갈아 넣으면서 아등바등 악착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힘에 부치는 일은 적당히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건강을 잃고 몸이 상하고 죽으면 살아서 얻은 부와 명성도 다 헛된 것. 쌓아놓은 돈도 소용없다. 천하의 스티븐 잡스도 췌장암 하나 잡지 못했다. 그가 가진 거대한 부로도,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의사들도, 최첨단 의학으로도, 잡스의 망가진 건강을, 망가진 췌장을 살려내지 못했다.




우리는 살면서 고통받고 셀 수 없는 실수를 많이 한다. 제 문제를 놓고 투덜거리다가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서야 아아, 그렇게 걱정거리를 안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 지를 깨닫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나중에 제 때 받지 못한 택배처럼 도착하는 법.



휠체어를 탄 채 오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지켜본다. 누군가가 어제 세상을 등져도 오늘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간다. 사고로 병으로 강제로 일상이 멈추고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 이마에 닿는 햇빛, 뺨을 스치는 바람, 손등에 내려앉는 먼지, 땅바닥에 흔들리는 발그림자, 사람들의 발소리, 말소리,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소리마저. 아름답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햇살의 따스함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따사로움에 햇살 한 줌의 감촉에 아, 살아 있구나.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오늘 하루가 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생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2015년 8월 그 한 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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