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단상

일상 일기

겨울 한파를 견디어내는 법

by 홍재희 Hong Jaehee




작업 중에는 되도록 요리에 들이는 시간을 줄인다.


삼시 세끼는 두끼로, 손이 덜 가고 치울 게 별로 안 나오는 밥상으로. 식탐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점심으로 간단히 토스트와 샐러드를 먹고 산책에 나섰다.


춥다, 는 핑계로 운동을 젼혀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뿔싸 통증이 재발했다.


정형외과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사라지면 그 때뿐이다.


어깨와 등은 굽고 허리는 휘고 골반은 틀어지고,


할 수만 있다면 온 몸의 뼈를 전부 뜯어내서 몽땅 재조립하고 싶은 마음이다.


수술같은 외과적 처치를 할 만큼 나쁘지 않으니 현재로서는 자세 교정 말고는 답이 없단다.


걷는 게 답이다. 걷고 또 걸어야 한다.


문득 마라톤을 뛴다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다.


자신이 달리는 이유는 오직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서라던,


달리기가 취미나 재미가 아니라 생존이라던,


프로라면 뭣보다 몸을 강하게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


학창시절 종일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무거운 기자재 나르며 촬영하고, 새우잠 자며 밤새 편집해도 끄덕없던 체력은 창창한 나이가 준 귀한 선물이었다는 걸,


꼬박 앉아서 글을 쓰는 일은 편집을 하는 것은 정신노동이 아니라 어쩌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육체노동이라는 걸,


젊은 날 막 살았던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걸.


나이들수록 몸뚱이가 문제다.


오래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몸을 만들어야 한다.


수도승처럼 규칙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동안 내부 공사로 굳게 닫혀있던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기쁘다. 행복감이 마구마구 몰려온다.


산책 후 도서관에 들러 책을 왕창 빌렸다.


겨울은 연례행사처럼 추리와 탐정소설을 읽는데 근래 몇 년간은 북유럽 추리 소설을 모조리 섭렵하고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를 여행하고 아이슬란드로 넘어갈 시간이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반해버린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말고도 새로운 작가들의 책이 눈에 띈다.


섬일주 트레킹을 떠났던 아이슬란드 링로드가 떠올라 잠시 즐거운 추억에 잠겼다.


나는 눈 내리는 도시 어둠이 내려앉은 레이캬비크 뒷골목을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걸어가고 있다.


떠날 수 없으면 상상한다. 가보지 않아도 갈 수 없어도 상상 속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어떤 경계도 아무런 제약도 없다. 책 속에서 나는 전세계를 마음대로 여행한다.


암울했던 어린 시절 청소년기에 나에게 유일한 피난처이자 해방구가 되어준 건 바로 책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태어나 살면서 들인 습관 중에 가장 쓸모 있는 짓 제일 잘한 일.


조지 RR 마틴의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구절이자,


일전에 유퀴즈에 정세랑 작가가 나와 말했듯이,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천 번은 산다'


지금껏 나는 몇 번을 더 살았을까.


쳇바퀴처럼 똑같은 일상 비좁은 인간관계만이 전부인 작은 세계에 살면 살수록 삶이 빈약해지고 시야가 편협해진다.


그럴수록 남의 생을 들여다보고 대신 살아볼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돈 한푼 안 들이고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겨우내 무기력을 극복하는 길_ 산책과 독서.






도서관 뜰에서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지나치며 슬쩍 곁눈질 했더니 그림책이다.


그림책 읽는 노인.


나도 그렇게 늙고 싶어졌다.



"지름길로 가면 빨리 도착할 수는 있지.


그런데 길을 잃으면 영영 도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단다."


ㅡ 헤닝 만켈 <사람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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