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에서 보낸 한철 일기
멜버른에 처음 도착한 다음 날부터 호되게 아팠다. 새해 첫날을 몸살감기로 시작하여 사흘을 끙끙대다 기적처럼 살아났다.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하룻밤 만에 공간 이동을 하니 몸이 난리가 난 모양. 현지 적응 훈련이라 생각.
호주에 온 지 이번 주만 지나면 벌써 한 달이 된다. 밤 9시가 넘어야 어둑 어둑 해지기 때문에 자꾸만 시간을 착각한다. 밤 열 한시가 다 되었는데도 고작 아홉 시 정도로 알고 있다가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서울은 강추위가 몰아친다는 데 여기는 햇살이 쨍 구름이 둥실 한여름이다. 참 이상한 기분.
해가 지고 뜨고 구름이 떠가는 풍경을 보는 재미. 집에 처박혀 일하느라 아직 변변한 바깥 구경 한 번 못 했다. 그런데 지금은 별 욕심이 안 난다. 사실 일을 마쳐야 마음 홀가분하게 배낭 메고 떠나볼 듯. 여기서 나는 그냥 호젓한 일상을 살고 있다. 좋다. 글 쓰는 일상. 집 근처 동네 산책만 해도 그만. 파란 하늘에 푸른 잔디에 색색을 자랑하는 온갖 꽃이 만발하다.
일주일에 한 번 장 보러 시장 가고 하루에 한 두어 번 개 산책 시키고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한다. 하루 해야 할 일을 끝내면 어쩌다 가끔 친구와 근처 공원에 나가 마리화나 말아서 한 대 피고 밤하늘에 총총 별 세다가 들어와 술 한 잔 먹고 잔다. 천국이 따로 없다. 친구는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지만 친구 잘 둔 덕분에 이렇게 찬란한 여름 평온한 일상 속 작업이라는 호사를 누린다. 나는야 한파 몰아치는 서울을 피해 날아와 남반구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
지난 주 멜번 시내에서 엄청난 대형 사고가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시내에서 차로 마구 질주 인도로 치달아 사람들을 치어 다섯 명이 죽고 스무 명 이상이 중경상. 이십 대 범인은 집에서 형이랑 말다툼 끝에 형을 칼로 찌르고 감옥 갈까 덜컥 겁이나 죽어버리겠다며 제 차를 몰고 무작정 밖으로 나온 모양. 결국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 한 사람이 시작한 말다툼, 순간 잘못된 선택, 분노의 바람이 바람을 타고 결국 다른 사람들까지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 죗값을 업을 어떻게 치르려고 하나. 사망자 중에 아기도 있어서 멜번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했다. 사고가 난 거리에 무성하게 쌓인 꽃다발을 본다. 애도의 물결. 사람 목숨이란 게 참..... 오늘 살아도 내일 죽을 수 있는 게 운명이라니. 삶이란 참 허망한 것. 부질없는 것. 그러니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