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떠나는 캠핑 2

여행자의 기록 21

by 홍재희 Hong Jaehee


여성은 혼자 자유롭게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지금도 세상의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자기 안의 검열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항상 여행길에서 나는 남자라면 받지 않았을 질문과 시선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여자가? 혼자? 여행을? 캠핑을?
안 무서워요?



덕적도 밧지름 해변에서 남자 주민에게 역시나 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누구를 무엇을 왜 무서워해야 하는데? 남자를? 그럼 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남자는 모두 여자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잠제적 범죄자 즉 강간범 살인범으로 간주하라는 건가? 그런 건가?

짜증이 신물처럼 올라왔다. 일일이 대답하기도 귀찮았지만 장난기가 발동해서 나는 정색하며 되물었다.

그럼 제가 지금 앞에 계신 분을 잠재적 강간범으로 간주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당황한 남자가 자기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치며 발뺌했다.

난 뭐… 그게 아니라 아니 뭐… 산에서 다칠 수도 있고 바다에 빠지는 그러니까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소린데.

코웃음이 나왔다.

그런 사고는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누구나 재수 없음 당할 수 있는 건데요. 그렇다고 혼자 여행 다니는 남자한테 조심해라 위험하지 않냐고 하십니까? 안 그래요?


내 말에 남자가 입을 쏙 다물었다.


날 걱정(?)해 주는 당신 빼고 다른 놈들은 다 위험하다는 건가? 당신만은 여자를 지켜주는 신사고 다른 놈들은 죄다 늑대, 잠재적 강간범인가?. 당신도 머리가 있으면 입장 바꿔 생각을 좀 해봐요. 역지사지는 이런 데 하는 겁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여행을 캠핑을 떠났다고 해서, 길 위에서조차 인간 세상의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을 맞닥뜨려야 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평생을 남자로 살아온 당신이 감히 알기나 하십니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은 오직 남성들만의 기득권 특권이었다. 여성은, 특히 어리고 젊은 여성,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혼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이 세계를 제멋대로 탐험하고 여행하고 즐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게 당연한 인간의 조건이지만 여자는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것조차 독립과 자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 홀로 길을 떠난다는 것은, 여성 자신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임을 선언하는 행위이며 가부장제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차별이 디폴트다. 남성은 인간의 기준이자 표본이지만 여성은 '여자'로 다르게 취급된다. 성인 남성은 존재 자체로 이미 주체적인 권리를 지닌 시민 대접을 받았지만 반면 여성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서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로 지배와 소유권이 넘어가는 물건 취급을 받았다.


반면 가부장제는 남자의 통제와 보호를 받지 않는 여성을, 남자의 그늘에 있지 않는 자유로운 여성을, 남자(아버지, 남편, 남자 친구)의 소유권이 없다는 의미에서, 만만하게 얕잡아 보고, 하찮게 간주해도 좋은, 해 성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자, 헤픈 여자, 거칠게 말해 창녀로 인식한다.


여성을 남성의 지배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어린아이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문화적 태도가 바로 여성혐오다. 홀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성인 여성을 이상하게 보거나 신기하게 보는 것 또한 가부장적 시선 바로 남성 우월주의의 시선인 것이다.



여성혐오는 남성에게는 여성 멸시를
여성에게는 자기혐오를 부른다.
ㅡ우에노 치즈코



그런데 이 같은 고정관념은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부지기수다. 남녀불문 이런 사람은 자신이 성차별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성차별주의자라 했을 때 발끈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자각도 못하는데 무슨. 공감이 성찰이 있겠나.


어쨌든 나는 여행길에서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이상하고 신기하게 여기거나 관심 또는 호기심의 표현이랍시고 시답잖은 질문을 여자에게 던지는 남자들은 길게 볼 것도 없이 단칼에 거른다.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고 성가시다.




덕적도 진리 도우항에서 배에 올랐다. 목적지인 인천항까지는 대략 두 시간 정도. 여기저기 졸고 있는 사람 아예 대자로 드러누운 사람도 있다. 갑판으로 나갔다. 수평선 너머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인천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들이 선실을 빠져나간 후 그제야 나도 내릴 채비를 했다. 그때 나는 석양 아래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홀로 선 여자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실루엣이 뇌리에 길게 남아서 핸드폰 카메라를 눌렀다.


그의 뒷모습이 내게 말을 건넸다. 운명이 나를 이끌어준 이 여행의 의미를 알려주는 듯이. 그 순간 나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말을 가슴에 되새겼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만의 고유의 법칙에 따라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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