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풍자의 미

by 우철UP

3개월이 넘어가는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재활치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형님(방영호-가명)과 누님(전정수-가명)이 있었다. 그분들은 뇌출혈로 인하여 한쪽 편마비 증세가 있으셨다.


편마비 증세가 심하게 있긴 하지만 늘 웃는 얼굴이어서 두 분의 얼굴은 정말로 사람 좋게 생기셨다. 특히 영호 형님의 웃는 얼굴은 광대승천한 하회탈의 얼굴이었다. 여하튼 영호형님과 정수누님을 매일 같은 치료실에서 뵙지만, 짧은 휴식시간에 이야길 나누기 때문에 늘 아쉬운 대화만 이어졌다. 그래서 병원 1층 카페에서 만나 그동안 밀린 이야길 나누기로 했다. 셋이서 요즘 말로 말하는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길 나누었다.


다치기 전에는 모두가 비장애인이었으니 자신의 과거 이야길 꺼내 드느라 남의 이야길 듣지 않았다. 자기의 이야길 꺼내 드느라 속된 말로 이빨을 빠르게 털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다가 보니, 다시 지난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갑자기 급 마무리가 되었다.


갑! 분! 싸! 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일이라’ 생각을 하니 정적과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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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틈을 노치지 않고 형님과 누님을 놀려댔다. “애자~ 애자~ 애자 형님~, 애자~ 애자~ 애자 누님~” 내 말을 듣고 영호형님과 정수누님은 선뜻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자? 애자가 뭐야?”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난 “애자 애자 장애자~장애자 형님, 장애자 누님” 그렇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영호형님과 정수누님도 나를 애자라고 놀려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애자라고 부르며, 한바탕 크게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풍자로 돌리며, 그것을 이야깃거리로 재생산시켰다. 서로가 기분 나쁘지도 않았고 웃고 떠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것은 서로 간의 충분한 교류와 함께 그때의 분위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자 애자 장애자’라고 서로를 놀려 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뺨을 맞고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나에게 의기소침한 병원생활에 한바탕 크게 웃는 활력을 더해 주었다며,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야말로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록 같은 증상은 아니지만 서로 감추고 싶은 불편한 신체를 풍자의 미를 통해 이야길 하다 보니 병원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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