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깨복은 5학년, 만복은 3학년 초등학생이다. 깨복은 3학년에 지금의 새로운 학교로 전학해 왔고, 만복은 1학년 입학했다.
나는 사실 교사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없다. 아니 보통의 기대도 없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초등학생 스무 명과 하루 종일을 보내고, 밥도 편히 먹을 수 없는 노동자인 교사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폭력과 폭언은 안 된다는 것 그뿐이다.
깨복은 전학생으로 만복은 신입생으로 새 학교의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아이의 학교생활이니 별 기대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깨복은 전학생으로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어 첫날, 같이 등교했는데 복도에서 깨복의 담임교사를 만났다. 서류를 전달하고, 딱히 마무리 인사가 없어 교사에게 “깨복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제가 잘할 게 없습니다. 학교생활은 아이가 하는 거라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나가는 말을 잡아 내용을 넣어 답해준 교사를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후 깨복의 담임은 아주 가끔씩 먼저 전화했다.
“깨복이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가끔은 다칠까 봐 걱정됩니다. 답은 없지만 부모님과 다치지 않고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나누어보라고 했습니다.”
“깨복이 전학 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수다스럽다고 했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상담 기간에 상담하러 갔을 때도 교사는 깨복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했던 농담과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고 쉬는 시간에 놀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알려주었다. 처음으로 학교 교사에게 관심, 애정, 다정함이 느껴졌다.
3학년이 되기 전 만복이 2학년 교사에 대해,
“선생님이 6학년 때까지 담임 선생님이 되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이 진심 놀랍기도 하고 부러웠다. 내가 학교에 다니며 기억하는 교사는 가볍게 혹은 거칠게 때리고, 스승의 날에 선물을 요구하고, 40분을 걸어 본인이 받은 선물을 집으로 옮겨놓게 하고, 학생들의 겨드랑이 밑 살을 만지고, 바닥에 화분을 던지고, 여자들은 냄새하고 더럽다는 말을 교실에서 내뱉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머지 교사는 이러한 다른 교사들의 행태를 목격하거나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만복이는 정말 좋겠다. 이렇게 또 같이 지내고 싶은 선생님이 있어서. 그리고 선생님도 정말 행복하시겠다. 엄마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무섭고, 때리고, 물건도 막 던지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이 없어.”라고 말했다. 깨복과 만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그래? 그럼 국민청원에 올려야지!”라고 말한다.
세상에 무결한 집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분명 좋은 교사도 어딘가에 존재했을 것이기에, 노동자로서의 교사를 생각하면 늘 만감이 교차했다. 교사의 업무환경과 고충을 들으며 일면 이해의 폭이 생기기도 했다. 다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12년간 내가 경험한 ‘선생님’이 조금은 더 좋은 교사일 수 없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