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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리 Aug 22. 2020

제주 #9

친구 그리고 색깔

04월20일 1230



친구 A는 나에게 짐벌을 소개한다. 사실 난 짐벌을 처음 본다. 요리조리 조작을 하더니 카메라는 중력에 자기의 몸을 맡긴다. 어떻게 움직이던지 화면이 고정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프레임에 담는다. 짐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데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이해는 가지 않는다. A는 자기가 아는 지식을 알려주는 걸 많이 좋아한다. 뭐 그래도 어떻게 쓰는지는 알겠다. 가끔 이런 잡다한 지식들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친구 B가 돌아와 앉는다.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B는 작년부터 일러스트,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어떤 크루를 만나고부터 영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찍은 영상들을,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영상을 서로에게 소개하며 각자 영상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폰트 고르기가 어렵다느니, 음악 고르기도 어렵다느니. 로그 촬영이니. 그래도 보기 좋다.

A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자신의 사진에는 색깔이 없다는 거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오지만 자기 사진에는 ‘나만의 색깔’이 없다는 거다. 계속해서 찾고 있지만 그 색깔을 찾기란 쉽지 않다. B에게도 B만의 색깔이 있고 나에게도 나만의 색깔이 있다고 한다. 그게 너무 부럽다고 한다. 내가 본 A의 사진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누구를 찍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변해왔다. 정확히 고정된 색깔은 없지만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담은 또는 그 상황을 가장 잘 전달하는 식으로 사진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도전을 하는 셈이다. 그게 아마 본인으로서는 정해지지 않아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흔히 하는 고민이다.

사실 나는 내 사진에 대해 큰 고민이 없다. 딱 취미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봤을 때의 예쁜 색감. A처럼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색감 가장 알맞은 분위기를 사진에 입히려고 한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줘서 감사하고 계속 사진을 찍는 데 힘이 되고 동기가 된다. 역시 취미까지가 딱 적당한 듯하다.


그저 즐기면서 만들어가는 취미.

제우스가 나타나 인사할 것 같던 하늘, 서촌

취미를 떠나 내 성격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다. 가끔은 내가 줏대가 너무 없지 않나 싶었다. 어떤 모임을 가든 나는 그 모임에 맞추어 행동했고 그 분위기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았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카멜레온색도 무지개색도 색깔의 한 종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하나로 정의된 그런 색은 아니겠지만, 나를 색으로 나타내면 ‘카멜레온색’이야. ‘무지개색’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느 곳을 가든 쉽게 적응하고 스며드는 그런 색 말이다. 재밌다. 정의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건, 생각하는 대로 변해버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건. 자기 주도적인 건지, 이기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커피가 나왔다. 내가 주문한 탠저린 카푸치노. 사실 아직 탠저린이 뭔지, 만다린이 뭔지 자세히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감귤과 감귤의 친구들(예를 들면 레드향이라던지 황금향이라던지)과는 조금 다르다. 이런 건 일단 차치하고 중요한 건, 이 커피는 향이 정말 좋다. 커피의 고소함과 감귤향이 잘 어울린다. 맛도 부담스럽지 않은, 아침 식사 이후에 감귤농장 풍경과 함께 먹기에 너무 좋은 향과 맛이다. 내가 데려왔는데 다들 만족스러워하니 또 다행이다.

영상에 대한 오랜 이야기를 끝내고 카페를 나선다. B가 카페 마당에 떨어져 있는 한라봉을 ‘툭’하며 발로 찬다. 자갈 위로 ‘우당탕탕’ 한라봉이 굴러간다. 꼭 ‘툭’ 차인 한라봉이 ‘우당탕탕’ 굴러가는걸 글로 남기고 싶다. 뭔가 그렇다. 이 상황이 좋다. 이 섬이 주는 특별함일까?


제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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