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공통주제 <연애>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연애라는 주제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기 때문이다. 연애란 단어는 낯간지럽고, 남의 옷처럼 불편했다. 마감이 가까워지자 주섬주섬 방 한편에 내팽개친 옷을 줏었다. 내키지 않는 패턴, 소재, 핏의 옷에 양팔을 넣었다. 그러다 '어떻게?'라는 질문에 다시 손이 멈춘다. 고민 끝에 내놓은 결론은 연애의 시작, 짧은 단상을 적어내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플롯이었다. 그 후에 어떤 개연성, 의미를 찾아 정리해볼까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방학 무렵, 한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자기가 속한 지역 만화 동호회가 작은 전시회 겸 축제를 하니, 놀러 오라는 것이 전화의 요지였다. 친구 몇 명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동호회 회원들 중에 또래 여자애가 한 명 있었는데, 나에게 호감을 보여 몇 번의 연락 끝에 사귀게 됐다. 이성 교제에 대해 호기심이 동했을 뿐,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 탓에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실체도 없는 사랑이란 단어가 핸드폰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보름이 안 돼 마음이 식었다. 첫 연애는 한 달을 넘기지 못 하고 끝났다.
20살, 전문대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업에 뜻을 두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가야 할 의미를 찾지 못 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던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이 학교로 이끌었다. 강의실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론 자퇴를 생각했다. 자퇴의 꿈은 이루지 못 했지만, 선배와 만남을 갖게 되며, 학교에 있어야 할 의미를 찾았다. 학업 대신, 연애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몇 번의 데이트 끝에 관계는 친구 이상으로 발전했다. 176의 큰 키에 빼빼 마른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려오던 이상형이었다. 첫 번째 연애의 실패를 본보기 삼아, 인터넷을 통해 배운 밀당 스킬을 써먹었다. 문자는 연락받고 10분이 지나서, 상대가 1시간 늦게 대답하면, 2시간 늦게 답장하기. 아퀴나스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책도 아닌, 인터넷 짧은 글 하나에 영향을 받은 나의 연애는 건강하지 못 했다. 감정을 오남용하다, 결국 방전되었다. 상대는 내 서투른 행동에 질려 만남은 백일만에 종말을 맞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옷 가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규모가 큰 매장이라 스태프가 많았다. 그들 대부분이 또래여서, 자주 어울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같이 일하는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다. 옷이란 공통 관심사가 있어, 대화가 잘 이어졌다. 몇 달 뒤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친구와 같이 옷 관련 사업을 했다. 부족한 준비로 사업은 얼마 가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실패가 눈앞에 보이자,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취업의 왕도를 걷고 있었고, 나는 쓸모없는 전문대 졸업장을 쥐고 저 먼 곳에서 멀뚱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기감이 들었고,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학원, 저녁 때는 알바 중에 짬을 내 복습했다. 여자친구는 낙천주의자로, 걱정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언젠가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 믿는 듯했다. 대화가 깊어지면, 일방통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착하니까..'라는 말로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외면했지만, 점차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그녀와 나의 삶의 방식은 맞지 않았다. 길고 긴 해외 생활이 시작되며, 3년 가까운 만남이 자연스레 정리됐다.
호주에서 사업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며, 당분간 만남은 없다고 다짐했다. 평균 온도 40도의 탄광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고, 공부하는데 투자했다. 반년이란 시간은 순간이었다. 시골 생활을 끝내고 도시로 와서, 계획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인간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 적응하는 능력이라고 한 혹자의 말마따나, 새로운 환경에서도 안정기가 찾아왔다. 숨이 트이자 짧은 연애를 반복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단 단점을 제외하곤, 문제가 없었다. 그녀들의 말은 내 깊은 곳에 닿지 못 했다. 게임에서 서브 상대는 벽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눈높이에 맞는 가벼운 농담을 건냈다다. 가슴속의 단어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소화하는 게 미덕이었다. 가벼운 만남에 질릴 무렵,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입에선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나왔다. 누군가와 공을 주고받게 되고,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맞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감수할 수 있겠단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단순화를 통해 연애로 인도한 것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여자여서, 예뻐서, 관심사가 같아서, 후엔 시간이 남아서. 어디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사랑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쓰기도, 읽기도 민망한 그 단어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궁금했다. 의미를 몰라서, 상대가 요구해서, 어색하게 꺼냈던 말이다. 사람들은 짜장면에, 송중기에, 강아지에, 예쁜 관광지에 사랑을 말한다.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서 홀로 겉돌고 있다.
절대적인 희생이 사랑이라면 어떨까? 모든 활동과 관념의 주체는 나이고, 중심 또한 나이다. 어느 정도의 희생이나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과 마주한다면,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순간순간 이타적일 수 있지만, 최후엔 자신을 위해 발길을 옮길 것이다. 최후의 갈림길에서 나를 포기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설렘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랑은 처음 본 사람, 혹은 연애 초기의 이성친구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존재가 사랑이라면, 사회의 의미부여에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동사 사랑하다의 옛말은 '괴다'이다. 풀어쓰면 고이다인데, 원뜻은 생각하다이다. 조상들이 보기에 사랑은 누군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반복된 생각이란 행위가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 없다. 밥이 사랑이 아니고, 잠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로스가 말하는 사랑은 어떤가? 이성에 대한 강렬한 성적 욕구가 사랑이라면, 인터넷과 TV가 사랑을 싣는 시대이다. 세상 많은 남자에게 포르노와 사랑하고 있다는 오명을 씌울 순 없다.
글은 처음에 만든 결승선을 지났다. 맞지 않아 보이는 옷은, 결국 맞지 않았다. 지치지만 결론을 위해 몇 줄 더 잇는다. 쓸 수 없는 단어는 차치하고, 지금 연애의 끝에서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다짐하게 만드는 것은, 상대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수 있냐 없냐의 문제이다. 이타심이 얼마나 마지막 갈림길에 근접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유물론자를 자처하지만, 나이가 들며 관념적 문제에 집요해진다. 집요하고 고독한 싸움이 누군가의 힘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상대 역시 투쟁의 과정 속에 있다면 그 존재에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연애의 시작을 나열한 글이므로 연애의 끝을 언급하며 마칠까 한다. 내가 내린 답으로써의 연애의 끝은 사유에서 나온 고통의 공유, 희생의 극단에서의 이타심이다. 테제인 나와 안티테제인 이성이 만나 새로운 테제를 만든다. 모두가 다른 안티테제를 원한다. 결국 연애의 끝은 인생을 위해 어떤 변증법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