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서울살이 16년과 앞으로의 시간들

7월 공통주제 <일상> ㅣ 이상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4 오후 1.38.04.jpg 사업가
갑자기 얻는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 프로필 ㅣ 이상은

Keyword: 연극, 여행, 춤, 다이어리, 팟캐스트



-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분석을 읽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일상성’은 계급모순, 자본의 집중 등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무관하고 부르주아적 관심거리로 치부되었다. 신마르크스주의자 앙리 르페브르(1901~1991)는 신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마수가 더 이상 생산의 영역(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가 이뤄지는 곳)에만 머물지 않고, 소비의 영역에까지 뻗어있다고 『일상생활비판』 3부작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일상세계가 상품의 소비과정으로 채워지면서 자본과 국가에 의해 조련되고 규정되어 간다는 것이다. 『공간의 생산』을 통해 일상과 ‘공간의 사회적 생산’의 관계를 고찰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 『리듬분석』은 공간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리듬’을 통해 그의 평생화두‘일상성’을 다시 풀어보고 있다.


공간과 시간이 같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제3항 ‘리듬’이 만들어진다고 르페브르는 주장한다. 이를 통해 공간의 리듬과 시간의 리듬이 맞물린 리듬에서 내 몸의 움직임(에너지)을 통해 발현되는 생명적·조화적·순환적 리듬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다운 리듬’을 통해 ‘체제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 혹은 ‘추상세계에 의한 구체공간의 식민화’를 극복할 수 있는 변혁의 리듬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하철, 16년의 서울살이와 내 일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면 약삭빨라지고 타의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는 반감 때문에 1년전부터 싫어졌다. 지하철 4호선에서 3호선으로 빨리 갈아타려면 성신여대쪽에서 7-3번문에서 타야하고, 종각역 10-4문에서 타야 외대역에 도착해 잽싸게 출구로 나갈 수 있다. 평상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발검음이 뒤에서 나를 재촉한다. 무슨 생각에 잠시 걸음을 멈추면 곧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 된다. 지하철을 타면 자꾸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버스를 타면 바로 잠들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평온하게 앉아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고향 전라도 광주에서 지하철을 타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객차안에서 처음1-1에서 끝4-4까지 다 보여 낙후된 고향의 한 단면에 서글픈 마음이 들면서도 아담한 크기에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내성적이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서 느리고 여유가 있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던 것들을 이제 내 힘으로 얻어내야한다는 압박감이 20대때 나를 정신없이 돌아다니게 했다. 끈기와 좋은 것을 골라내는 안목이 부족해 실속이 없이 바쁘기만 했다. 저자강연회를 가면 책을 반복하는 내용이거나, 모임을 가면 처음에 혹했다가 금방 포기한다는지 늘 이런 식이였다. 조급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다보니, 빠르고 불안한 리듬을 가지게 되었다. ‘차라리 고향에서 계속 살았다면, 책을 많이 읽고 인간관계도 더 좋았겠다’하면서 공허한 마음에 몇 년전부터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대학1학년때부터 살고있는 성북구 동선동에서 16년동안 살고있는데, 변화가 너무 없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다. 이사를 4번 다녔는데 모두 걸어서 3분거리이다. 혼자 무역오퍼상일을 하고 있는데, 집근처 5분거리 도서관에 가서 일한다. 15분정도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것도 귀찮아 2년전에 사무실을 없애버렸다.


매일 아침에 8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느긋하게 준비하며 10시 30분쯤 도서관에 도착한다. 직장인이였으면 후다닥 출근준비를 했을텐데, 느릿느릿 하는게 못마땅하지만 느리게 작동하는 나의 리듬을 빨리 하지 못한다. 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12시에 집에 돌아온다. 밥먹고, 청소하고, 반찬 만들고 잠깐 낮잠을 잔다. 2시쯤 돌아와 다시 일을 하고 답답해지면 책을 보거나 뒤뜰에서 쉰다. 6시쯤 되면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 동호회를 가거나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본다. 나름 만족스런 일상이지만 무료할 때도 많다. 일부러 낮에 영화를 보거나 모임에 가기도 한다. 이전에는 낮시간대에 일을 하지 않고 취미활동을 하면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리듬분석』을 읽으며 리듬에 약간의 변화가 주는 긍정적변화에 대해 더 크게 자각하게 되어 죄책감이 줄어들었다.


내 일상에 대해 만족하면서도, 서울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공기안좋은 서울에서 스마트폰앱에서 전국최저 미세먼지를 기록하고 있는 광주를 보면, 고향이 더 그립다. 주말에 산에 가서 새소리를 듣거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서울 근교 파주나 춘천이라도 이사를 갈까싶으면서도,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서울이 주는 혜택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고, 이동하는데 시간을 쓰기 싫으니까...

대학시절 유럽 배낭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도시의 공원에서 쉴 때였다. 박물관,미술관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보면 질리기도 하고, 시골에서는 아름다운 경치와 여유있는 시간이 그리 좋은지 몰랐다. 마음편하게 벤치에 사람지나다니는 거 구경하다가 낮잠을 자고, 빵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싫증나며 비둘기 모이를 줄 때 세상은 정말 평화로웠고, 나는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항상 그 때를 그리워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서울에서 사는 삶에서 그런 행복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매주 화요일 오전 안국역에 있는 wstage의 춤 모임처럼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렸을 때, 클래식 음악이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 너무 좋다. 9개월동안 참여하면서 토요일이 되면 화요일 오전이 기달려질 정도로 삶의 낙이 되었다. 버스 272를 타고 연세대쪽으로 가다가 안국을 지날 때 보이는 건물 전경과 4층 통유리연습실을 보며 마음에 흐뭇해진다. 이렇게 일상에 약간의 변화를 주며 내 삶의 터전 ‘서울’과 그곳에서 보내는 내 삶의 시간과 리듬을 사랑하게 된다. 르페브르가 주장한 ‘나다운 리듬’을 실천하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법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다. 21c 대한민국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나는 나만의 리듬을 지키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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