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침대중독

<중독>에 관한 이야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난 침대 중독자다.

집에있는 동안 내가 침대에서 벗어난 때는 오직 화장실 갈 때 뿐이다. 즉 나는 침대에서 책을 읽고, 침대에서 밥을 먹고, 침대에서 일을 하고, 침대에서 운동을 하고 결국 침대에서 골아떨어져 잠든다. 이런 지독한 침대 중독 때문에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멀쩡한 침대를 버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요가 매트리스를 깔아놓았었다. 하지만 역시 스프링 매트리스가 있는 포근한 침대가 너무 좋다. 그래서 이사하자 마자 새 침대를 사고 말았다.


난 집 밖에서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다. 검도학원, 요가학원 두군데를 다니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취미로 탱고도 춘다. 집에서 네정거장 정도 되는 지하철 역도 늘 걸어다닌다. 매주 일요일엔 4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 고수부지를 달린다. 카페에서는 한시간 넘게 앉아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 견딜 수 없어 튀어 나오고 대중 목욕탕에서도 10분 이상 탕안에 있지 못한다. 그래서 카페에서 노트북을 갖다놓고 일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침대에서 책상까지 단 두걸음만 걸으면 도달하는데 그것도 귀찮아 좀처럼 책상에 앉는 일이 없다.


왜 난 이리도 침대를 좋아할까?

난 오늘, 하루종일 나의 침대 중독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집안에 들어오면 빨리 눕고싶다.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자마자 제빨리 침대로 달려가 점프를 한다. 흐트러진 이불 사이에서 고양이 미선이가 냐~옹하며 튀어나온다. 앗 너 거기에 있었냐? 생각해보니 미선이도 심각한 침대 중독증이 있다. 밥먹을 때 빼고 그녀는 늘 침대 위에 엎드려 있다. 1미터가 남는 초호화 캣타워를 사줬는데도 좀처럼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난 그 캣타워를 집에 가져올 때 미선이가 아주 좋아할 줄 알았었다. "전 자이에 살아 행복한 여자랍니다~"하면서 말이다. 역시 주인을 닮은 것일까? 맞다. 미선이가 어릴 적에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새부터인가 늘 내 곁에 붙어다녔고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부모에 대한 애착관계가 점점 심해졌다고 할까? 내가 맨날 싸돌아다니니까 많이 외로웠나보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한테 있다. 내가 침대에서 벗어나야 미선이도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난 왜 침대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할까?


첫째, 책상에 대한 혐오증을 들 수 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독서실에서 살았다. 조그만 닭장 속에 갇혀 공부만 했다는 얘기지...날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 엄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 틀린 갯수만큼 철제 옷걸이로 손바닥을 맞았다. 난 그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겨서 지구상의 모든 아이들이 옷걸이로 맞는 줄 알았다. 중학교 때인가 시험 전날 너무도 공부하기 싫은 나머지 잠이 쏟아졌고 한 시간만 자고 공부를 하겠다고 엄마한테 허락을 맡았다. 한 시간 후에 엄마가 날 깨웠는데 너무나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잠든 척을 한 적이 있다. 날 흔들고 내 뺨을 때리던 엄마는 결국 포기하고 내방을 나갔다. 엄마가 나가고 나니 마음이 불안해서 계속 잘 수가 없었다. 얼굴을 덮고있던 이불을 살짝 내리고 문 쪽을 봤는데 세상에 문틈으로 엄마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 순간의 공포는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엄마는 문을 열고 들어와 옷걸이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정없이 때렸다. 난 이불 속에 웅크리고 숨어서 당신의 힘이 다 빠질때까지 참아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난 초등학교 때도 4시간 이상 자지 못했다. 아빠는 애좀 재우라고 했지만 엄마는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날 늘 깨웠고 새벽공부를 시켰다. 그래서 난 책상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식은 땀이 흐르고 장이 꼬인다.


둘째, 난 폭신한 것에 대한 강한 집착증이 있다. 지금도 뽁뽁이를 너무 좋아해서 택배가 오면 나오는 뽁뽁이를 모두 모은다. 가끔 친구가 집에 왔을 때 내 방 한구석에 있는 뽁뽁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뽁뽁 터뜨리곤 하는데 그때 나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뽁뽁이를 빼앗는다. 뽁뽁이는 공기가 차 있음에 자신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라 절대 터뜨리면 안된다고~ 외치는 나를 그는 이상하게 쳐다본다. 내 뽁뽁이의 용도는 침대에서 내려올 때 사뿐히 밟고 내려올 때 쓰인다. 그 기분은 마치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다. 나의 이런 습관이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생각해보면 바로 우리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마다 나를 깨워서 같이 화분을 옮기곤 했다. 야자수를 닮은 이름도 모르는 큰 나무가 마루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놈을 일요일마다 베란다에 옮겨 놓으셨다. 아마도 일주일 에 한번 즈음 광합성 운동을 시켜주려고 했나보다. 어쨌든 난 그 때가 너무너무 싫었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어 몸도 흐물흐물한 상태인데 그때 힘을 쓰다보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아빠 허리 안 아프세요? 아파. 근데 지금 꼭 옮겨야되나요? 응...

아마도 그런 연유로 난 폭신한 것에 집착하게 되었고 오리털 파카보다는 거위털 파카를, 컨버스 운동화보다는 에어 운동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셋째, 난 잠자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만큼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나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자고있는 시간에 삶의 비중을 더 두는 편이다. 즉 자기 위해서 산다고 할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죽으면 영원히 잘 것인데 왜 그렇게 자려고 해?" 하는데 그때마다 난 "죽으면 꿈을 못 꾸잖아~" 대답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틀어막는다. 내게 꿈꾸는 시간은 가장 진실된 순간이요, 내 무의식을 탐험하는 시간이다. 난 사실 삶에서 의식의 발현보다 무의식적 발현이 더 큰 사람인데 그만큼 오랜기간동안 나의 무의식을 심층탐구 했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전엔 무조건 잠을 잔다. 잠을 자면 난 망태기를 등에 맨 해녀가 되어 무의식 바닥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전복, 멍게, 해삼을 따서 망태기에 담는다. 잠에서 깨자마자 머리 옆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재빨리 열고 우다다다 기록한다. 심각한 것은 내가 꾸는 꿈이 일반사람들의 꿈처럼 환타지 장르가 아닌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꿈을 꾸면 사람들이 카페에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것 말고는 별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즉 지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잘 안가고 잠에서 깨어있을 때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잘 안간다. 그래서 꿈에서 미인을 만나 덮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곁눈질로 훔쳐만 볼 뿐이다. 한번은 극적인 꿈을 꾼 적이 있기도 하다. 꿈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옆에 있는 차가 차선변경을 하다가 내 차를 긁고 뺑소니를 쳤다. 난 그 차를 쫓아가다가 결국 놓치고 꿈에서 깼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다시 자서 쫓아가려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 화가 났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왜 '드림캅' 같은 것은 없을까? 꿈속의 미제사건을 해결해주는 경찰이 있으면 잠에서 깨고 나서도 신고할 수 있을텐데... 어째든 내가 잠에 집착하는 이유는 현실이 그리 살고싶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 상황도 마치 꿈만같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믿고싶지도 않다.


정리를 해보니 내 침대 중독증 원인은 모두 트라우마에서 온 것 같다. 그 트라우마는 내가 겪은 외부상황과의 충돌에서 생겨난 것이고 난 나름 발란스를 유지하기 위해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지금의 중독이 내 삶에 악영향을 끼쳐서 문제가 되면 바꿀 필요는 있다고 본다.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두가지 의문을 갖는다. 현재 침대 중독증이 문제가 되려나? 침대 중독증이 내 삶에 끼치는 악영향이 있다면... 잠을 많이 자서 삶에 많은 성과를 못내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일 것이다. 꿈속의 삶을 포기하고 좀 더 현실의 삶을 살아야할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해서 지금으로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만약 변화해야 한다면 혼자 극복하기는 힘들 것 같다. 혹시 침대 중독자들의 치료 모임이 없으려나? 있어도 그곳에 가기 두려워지는 것이 분명 거기 모인 사람들은 "혹시 침대 어떤 것 쓰세요?" 물을 것이고 에이스 침대나 시몬스 침대같은 고가의 침대를 쓰는 사람들은 우쭐거릴 것이 뻔하다. 한국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늘 벌어지는 일이라 안봐도 뻔하다.


혹시 모르지 연애라도 하게 된다면 열심히 집밖으로 뛰쳐 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이라도 하게된다면 난 다시 침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와이프가 철제 옷걸이로 날 사정없이 때리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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