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가을이 겨울로 - 해장

ONE DAY ONE PAGE ㅣ 적진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3-28 오후 2.37.37.png SF 철학자


올해 목표를 책 쓰기로 정하고 끄적거리는 중입니다. sf를 좋아하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시도는 하지만 끝내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주제는 넓지만 깊게는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함은 있어 꾸준히 한 걸음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적진

뼛속까지 SF인 남자




편의점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들었다

많은 술중에 녹색 이파리가 인상적으로 그려진 복분자 함유 술이였다 빨강색이 녹색 소주병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단풍잎이 그려진 녹색병의 술은 복분자 맛이 난다는 이상한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단풍잎이 혹시 대마잎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대마잎을 상표로 인정해줄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을 것 같고 단풍나무잎을 내짧은 식견으로 잘못 알아본 건지도 모른다

붉은색의 술은 술잔에 따라보니 상당히 예쁘다 투명한 소주잔에 붉은 선홍색의 술은 추운 가을밤 겨울 같은 저녁을 따듯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한잔을 털어 넣으니 빈속에 밍밍함이 다가온다 혀는 싸구려 쭈쭈바의 맛을 기억해냈고 전 에먹던 복분자술들과의 비교로 내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렸다

두 번째 잔이 속으로 들어가니 살짝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 한다

술 뒷맛의 쓸쓸함이 살짝 올라왔지만 쭈쭈바의 단맛에 가려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소주 한잔 먹고 캬~ 하던 기쁨마저 없어져 버렸네 라고 생각이 들어 안주를 찾기 시작했다

새우깡 한 봉지라도 있으면 한 병 정도는 가볍게 비우겠지만 빈속에 계속 먹기에는 미묘한 쭈쭈바 맛이 안주를 찾았다 집에 굴러다니는 안주는 없나 냉장고 찬장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커피과자 하나가 나온다 비닐을 뜯어 한 입 배어 물고 세잔째 소주를 속으로 들이부었다

얼굴은 벌게지고 살짝 초점이 흐려진다

세잔 먹고 병을 들어 붙어있는 라벨을 확인하니 12%소주에 비하면 한참모자라는 도수인데 내가 몸이 약해진 건가 살짝 의심이 든다 마저 커피과자를 우걱우걱 먹어치우고 네번째 잔 부었다 윽~ 몸이 떨리고 쓴 맛이 확 올라와 반절 먹고 내려 놓았다

벌써 취기가 올라오네

몸이 벌거케 달아오른다 다시 병을 들어 라벨의 글들을 모두 읽고 잔을 비운다

병에 분홍액체는 삼분의 일 정도 남아있다 녹색병과 분홍병 뚜껑이 어딘지 맘에 들지 않지만 탁자에서 병뚜껑을 찾아 녹색 병에 돌려막았다

더 먹어 말어 갈등이 들긴 했지만 그냥 이정도로 멈추자 더 먹으면 내일이 힘들어 세잔정도 남은 병을 한번 흔들어 보고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에는 전에 먹던 복분자술이 보였다 비싸도 담부터는 저거 사먹어야지

단풍잎에 속아서 입맛만 버린 것 같고 갑자기 돈도 아까워지기 시작했지만 싸니까 가격 대비 우수하다는 평과 함께 냉장고에 넣어두고 냉자고 문을 닫았다 이불을 펴고 이블 속으로 쏙 들어갔다

오댕국하고 한 잔먹었음 맛있었을 텐데 정종에 따뜻한 오댕 한 입먹으면 좋겠다 정종의 쌀맛이 좋아지는 나이가 된 것 같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되는 시점이 된 것 같기도 해서 서글프기도 하다

에잇~ 따듯한 이블 속이 좋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어가 있으니 사방이 어둡다 포근한 느낌이 들고 잠이 오지만 잠시 있으니 덥다 이불을 살짝 한 쪽을 들자 차가운 기운이 확 밀려 들어온다

가을이 왜 이렇게 추워 겨울 같아 다시 이불을 꽁꽁 말아서 돌아 누었다

힘든 기억은 항상 겨울에 있던 것 같아 이 겨울 같은 가을을 잘 보내야 할 텐데 겨울이 빨 리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는 사이에 졸음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살짝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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