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얼음> ㅣ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초등학교 때는 방학마다 할머니 댁에 일주일이나 이 주 정도씩 있다 왔다. 그래야 했던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부모님께 잠시 여유를 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오빠와 같이 갔었고, 나름 오빠가 같이 놀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할머니도 아직 환갑이 되지 않아, 근처 공장에서 밥 짓는 일을 하시던 때였다. 공장의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지어서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실 때면 늘 커다란 누룽지를 비닐 봉투에 담아 오셨다.
방학 때 할머니 댁에서는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또래의 사촌이나 동네 친구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일요일에는 큰이모 할머니 댁이 있는 모산 근처의 성당에 가거나, 할머니를 따라 온양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오기도 했다. 매년 와도 그다지 다를 게 없는 동네였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다녀오는 슈퍼나, 동네 놀이터나, 기찻길 건널목이나, 작은 마당의 밤나무와 감나무 같은 것들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여름에는 그래도 꽃도 피고 돌아다니기도 좋지만, 겨울은 정말 할 일이 없었다. 닳아 없어질 듯이 할머니댁 서가에 있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파레아나의 편지]를 읽었다. 탐구 생활을 하고 날씨 표시를 하며 날마다 똑같은 내용의 일기를 써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눈이 내리고 나면 한동안은 재밌었다. 눈 사람을 만들고 오빠와 둘이 눈싸움을 했다. 보통은 내가 울면서 끝나곤 했다. 눈이 내린 다음날, 밖에 따로 만들어져 있던 화장실의 물결무늬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고드름이 자랐다. 가늘게 자란 고드름은 손날로 톡톡 끊는 재미가 있다. 그나마도 오빠가 상대해 줄 때의 이야기지만, 커다랗고 제법 굵은 고드름은 칼싸움하기 좋았다. 대부분의 경우 혼자 그저 고드름을 부러뜨리거나 여기저기 두드려 보면서 놀았다. 털 장갑을 끼고 고드름을 잡으면, 그 안에서 고드름이 잠깐 녹았다가 바로 얼면서 털이 달라 붙어, 찐득한 것을 떼어 내는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혼자 고드름을 가지고 놀 때, 나는 여지없이 고드름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 안에 넣는 것이 아니라, 립스틱 마냥 그 끝으로 입술에 문질러 보는 것이다. 물론 차가우니까 오래 그러고 있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도 고드름을 입술에 처음 댈 때의 느낌, 즉 달라붙는 듯 차가웠다가 입술의 온기에 녹아 아주 잠깐 뜨거워지고, 이내 그 녹은 물이 마찰력을 걷어 내어 입술 위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감촉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미끄러운 것은 분명 부드러운 것과는 다른데, 손이 베기도 쉬운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입술에 문지르며 나는 부드럽다고 느꼈다. 차가운 나머지 곧 바닥에 버리게 될 고드름 사이를 겨울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할머니 댁 마당 위로 길고 희미한 내 그림자와 고드름의 투명한 그림자가 비친다. 그 사이에도 쉴새없이 얼음 녹은 물이 땅을 때리며 기묘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할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 풍경 안에서는 오빠도 어쩐지 없다. 어린이용 분홍색 부츠를 신고, 개나리색 겨울 점퍼를 입고, 고드름 녹은 물로 흥건한 붉은 입술의 어린 나만 그 풍경 안에 서 있다. 엄마가 보고 싶다. 다음 고드름을 뚝, 분질러 입술로 가져간다. 차갑고,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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