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썸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KEYWORD ONE PAGE <썸>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병신아. 그거 썸 아니라니까"



A는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개연성도 없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공상 과학 소설이었다. 한 시간동안 곰곰이 들어본 녀석의 정황을 미루어보건대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오직 그 녀석만은 출처를 알 수없을 확신에 차있는 듯했다.



"아 글쎄.. 니들이 모르는게 있다고"


"그래. 내가 모르는게 뭔데?? 말해보라니깐"


"아 글쎄.. 넌 말해도 몰라. 여튼 그런게 있어"


병신도 이런 병신이 따로 없다. 그래 이런 종류를 병신중의 병신, 상병신이라고 하는가보다. 나를 비롯한 친구B는 가끔은 조롱이 섞인 비아냥으로 또 가끔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혹은 침묵으로 친구A의 썸인지 쌈인지 모를 그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토론했다.


우리는 그렇게 밤새 소주잔을 기울였고, 어느새 만취를 해버려서는, 버스도 끊겨버린 새벽녘 거리 위에서, 기억에도 없지만, 어깨동무를 하고 고성방가를 해대며 적어도 순수하기로는 세상에서 당해낼 자 없을 그 녀석의 사랑을 위해 파이팅을 외쳤었나보다. 그렇게 며칠 후 친구A는 기어코 이름모를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심지어 글쎄 그 앞에서 달콤한 사랑의 세레나데까지 불러줬다지 않은가? 그리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짐작하는 그대로다. 공상 과학 소설의 끝은 어처구니 없게도 뻔한 결말이기 마련이다. 외계인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라던가... 외계인이 알아서 자멸했다라던가...


어쩌면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절대 비켜가지 않는 질문이자 풀리지 않는 의문인지도 모르겠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연애의 고수였던 우리가 왜 당사자가 되어버리면 세상 모르는 사랑의 바보, 상병신이 되어버리냐는 것은 말이다. 왜 꼭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해버리면 우리는 아둔해지고 모든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는지.. 밑도 끝도 없이 그린라이트를 깜빡이며 벼랑 끝으로 가속 페달을 밟아 돌진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는지...


'니들이 모르는게 있다고'



그래. 우리는 모를테다. 그와 그녀의 사정을 말이다. 너와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 알수 없을 그 곳의 특별한 분위기. 눈을 감으면 생생히 기억나는 냄새. 머리칼 위에서 산란하는 조명빛과 허공에서 부딪치듯 어지러이 교차하는 너와 나의 시선. 나를 바라보고 있던 너의 시선을 인식하는 것. 그 시선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애꿎은 옆 사람과 대화하는 척을 하는 것도. 나를 향해 보내는 그리고 너를 향해 보내는 이 모든 무언의 신호를 그리고 마음을...



'넌 말해도 몰라. 여튼 그런게 있어'



그래. 그 어떤 것. 썸이라는 것. 바로 그 것 때문일 것이다. 좀처럼 어떤 글로도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애매한 거시기 뭐냐 여튼 그 것 때문일 것이다. 나를 수없이 간지르며 잠 못들게 하며 왠갖 핑크빛 상상속으로 빠트리는 그 것. 그 어떤 누구에게도 통용되지 않지만 오로지 나에게만 그리고 너와 함께일 때 특별할 수 있는. 세상 모든 일은 녹록치 않아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이번 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한껏 물들게 하는 것.

'썸띵'


어쩌면 우리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를 받았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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