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분홍색 수건

KEYWORD ONEPAGE <생일> ㅣ 최미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5 오후 2.18.58.png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친구에게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어서 연락을 해도 이야깃거리가 궁한 친구였다. 카톡의 내용은 6월 초에 아기 돌잔치가 있으니 시간 되면 밥이나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작년에 아기 백일이 되기 조금 전에 만났었는데, 실제 아기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꽤나 심각한 난산이었고, 낳은 이후에도 아기가 많이 못 먹는 편이라 고생했었다. 그 날 만난 이후에는 명절 인사 정도만 나누었다. 그럼에도 나는그 친구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돌잔치에 부르고 싶은 학창 시절의 친구 였을 것이다. 약도를 보니 돌잔치 장소는 마침 인천 엄마 집에 가까웠다. 겸사겸사 같이 다녀오면 되겠구나 싶어, 회사 일만 없으면 가겠다고 했다. 퇴근 후 저녁에는 인터넷으로 돌 선물을 골랐다.


돌잔치는 6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 날은 새벽 네 시까지 회사에서 작업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 10시부터는 또 다른 작업이 잡혀 있었다. 그래도 이미 선물로 산 아기용 스카프는 우리 집에 도착해 있었고, 혹시 잊어 버릴까봐 쇼핑백에 넣어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스카프 외에 전달할 흰 봉투도 전 날 찾아 두었다. 한숨을 쉬고 밖을 나서니 날씨는 여름이나 다름없었다. 인천으로 가는 공항 철도를 타고 좌석에 앉자, 몸이 자글자글 녹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 속에는 다른 생각없이 자고 싶다, 라는 문장만 내내 맴돌았다.


한 시간 정도 걸려 돌잔치 장소에 도착 했다. 참석한 사람은 대부분 친척이거나 친구 남편의 직장 동료로 보였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내 기억 속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의 친구의 어머니께서 계셨다. 친구의아버지는 확실히 나이가 들어 보였고, 나를 기억하지 못 하신 듯 허리를 굽혀 인사 하셨다. 자리를 잡고 먹을 걸 가져오기 전에 인사는 해야 할텐데, 하는 중에 뽀얗게 화장을 한 친구가 들어섰다. 친구와 친구의 딸은 커플로 연둣빛 한복을 맞춰 입었다. 친구의 딸은 제 아버지를 좀 더 닮은 듯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선물과 봉투를 건냈다. 돌잔치 봉투에 이름을 썼어야 했었는데, 깜빡했다.


뷔페에서 떡볶이며 볶음밥, 피자 조각 같은 것을 두서 없이 접시에 담아와 먹기 시작했다. 음식은 괜찮은 편이었고, 옆 테이블의 친척 어르신들은 대게의 다리 껍질을 한 쪽 접시에 수북이 쌓아 두고 있었다. 곧 사회자가 요란스럽게 이목을 집중 시켰다. 조명이 꺼지고 돌 기념으로 제작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 속의 내 친구의 이미지들은 조금씩 내가 알고 있던 친구의 모습과는 어긋나 보였다. 그렇지만 미숙아를 가까스로 벗어난 채 태어난 친구의 딸이 조금씩 사람 같은 얼굴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건 제법 마음이 짠한 일이었다. 영상 상영을 마치고, 촛불을 불고, 돌잡이 순서가 되었다. 아기 아버지는 판사봉을 원했고, 내 친구는 연필을 원했다. 아기는 연필을 잡았다. 그 때, 나와 그 친구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적이 좋은 사람을 동경하고, 한 동안은 조금 이상하리만큼 공부에 집착해서 얼음물을 대야에 담아와 발을 담그고 새벽 두 세시까지 공부를 하던 아이였다. 심지어 시험 기간도 아니었다. 그 시절 친구의 초조한 모습이 생각나자, 뒷목을 지그시 누르는 피로감은 조금 더 심해졌다. 마이크 볼륨도 너무 큰 것 같았다. 사회자는 금새 경품 추첨까지 마치고 행사를 종료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전형적인 돌잔치였다.


커피를 한 잔 가져와 마시며, 친구에게 인사할 타이밍을 살폈다. 친구는 누군가가 가는 것을 배웅하기도 하고, 사회자와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 아버지는 딸 아이를 여기저기 어르신들에게 안겨 주며 인사 했다. 아기는 울지도 않고 아주 얌전했다. 지금인가, 싶어 일어나 친구를 잡았다. 고생했다고 하니, 이제 시작이란다. 오늘 시댁 어르신들이 모두 주무시고 가기로 했다고. 나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나지막이 파이팅, 하고 말했다. 친구가 챙겨주는 돌 선물을 하나 들고, 다시 친구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슬쩍 열어 보니 분홍색 수건이 들어 있었다. 친구의 딸 이름과 원숭이가 수 놓아져 있었다. 내 조카도 원숭이 띠인데, 우리 엄마가 보면 좋아하겠구나. 건물 밖의 온도는 한 시간 전보다 더 뜨거웠다. 다행히 엄마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금방 탔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자리에 앉아 나는 분홍색 수건으로 이마에 배인 땀을 찍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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