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윙크 스튜디오

공통주제 <이사>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모처럼 부모님과 저녁을 먹게 되었다. 내달 초 부모님 집으로 다시 이사 하게 되는 상황이라 이것저것 상의하고 계획을 세우는 자리였다. 어머니가 몹시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고기집으로 안내했다. 그 집은 아베리코 흑돼지로 유명한 집인데 아베리코 흑돼지란 스페인 청정구역에서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이다. 특히 삼겹살의 절반이 비게인데 느끼하지 않고 무척 꼬소했다. 삼겹살 3인분을 주문했지만 고깃집 주인은 어른들은 차라리 목살을 드시는 것이 낫다며 목살로 갖다 주셨다. 그의 현명한 결단력에 마음으로 박수를 치고 고기를 열심히 굽고있는데 마침 가게 안 TV에서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가 하고있었다. 난 처음 보는 드라마인데 어머니는 팬이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시며 열심히 보고계셨다. 화면 속에 무척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정소민. 본명은 김윤지. 나도 모르게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윤지야 참 오랜만이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게 2005년인데 세월 참 빠르다. 집게를 들고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있는 내게 아버지는 "뭐해? 고기 타는데!" 소리 치셨다. 아! 다시 시선을 돌려 고기를 굽다가 나도 모르게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윙크 스튜디오!"


"뭐라구?"

"아..아니예요. 고기 익었어요. 엄마! 그만 보시고 고기드세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기를 드시면서 이사 준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오토바이는 왜 안 버리냐? 위험하니까 그냥 버리지... 방은 제대로 청소하고는 있니? 네 집보러 왔다가 더러워서 도망가겠다... 너 아직도 만나는 여자 없니? 오랫동안 혼자 살았는데 도대체 뭐한거니? 집에 놀러오는 여자 정말 한 명도 없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씹고있던 상추쌈이 차마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네~네~" 대답하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윙크 스튜디오를 다시 애써 떠올렸다.

부모님이 워낙 잔소리가 심해서 유년시절 내 꿈은 무조건 독립이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나가서 혼자 살리라. 하지만 보증금과 월세 낼 돈이 없는 관계로 비굴하게 참고 있었다. 드디어 군대를 입대할 때 비로소 난 환호성을 질렀다. 내게 군대시절은 수학여행과 별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제대일이 가까이 올수록 불안해지면서 ‘이제 난 어디서 살까'걱정이 되었다.

제대 후 결국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안 나 명동에 있는 아버지의 판소리 연습실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한겨울에 썰렁한 연습실에서 자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갑자기 바닥 전기공사를 하셨다. 그리고 연습실은 졸지에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이후 종로 근처에서 술 먹고 집에 못간 지인들이 밤마다 연습실로 모여들었다. 연락도 없이 새벽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편의점에서 사온 술과 과자로 판을 벌렸다. 자다가 비몽사몽 불청객을 맞이한 나로서는 ’그냥 가라‘ 말할 틈도 없이 어느새 누군가 말아준 소맥을 마시고 있었다. 행여 여자 멤버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우린 어김없이 윙크게임을 했다. 윙크게임이란 술래가 한명만 빼고 모두에게 몰래 윙크를 보내고 마지막까지 윙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임이다. 이 게임 덕에 연습실에서 많은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고 연습실은 ’윙크 스튜디오‘라고 불리게 되었다.

윙크 스튜디오의 아침은 언제나 새벽 6시에 울리는 명동 성당 종소리로 시작되었다. 나의 아침 일정은 밤새 어지러워진 연습실을 청소하고 널 부러진 지인들을 깨워서 집에 보내는 것이었다. 오전 9시가 되면 아버지가 항상 출근 하셨고 오후 6시 까지는 글을 쓰시거나 판소리 연습을 하셨다. 아버지가 판소리를 하시는 동안 난 다도로 차를 준비해서 차를 드리곤 했다.


“차 맛이 어떻습니까?”

“차 맛이 좋구나.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고?”

“별로 특별한 기별은 없사오나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오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래? 점심은 요 앞 삼계탕 집을 가자꾸나.”

“아주 좋습니다.”


내가 밤새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아버지는 삼계탕을 사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술 냄새를 맡으시고 해장을 시켜주신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까지 혼자 일을 하러 가거나 명동, 을지로, 종로,충무로, 안국동 일대를 서성였다. 주로 중앙극장, 피카디리, 서울극장, 씨네코아, 대한극장, 허리우드극장, 아트선재센터에서 혼자 영화를 보았다. 특히 중앙극장은 스튜디오에서 나오면 닥 열 걸음 만에 도착하는 곳이라 영화를 안 봐도 에어콘 바람을 쐬러 자주가곤 했다.

그렇게 서성이다 만난 수많은 영화인들과 연극인들은 윙크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술을 마시러 오기도 하고 연습을 하기위해 오기도 했다. 연극 연출가 양정웅씨와 그의 극단 배우들이 연습 후 감사의 뜻으로 커피메이트를 사주기도 했고, 뮤지컬 빨래의 연출가 추민주씨와 음악감독 민찬홍씨가 작업을 하기도 했다. 또 놀러온 배우들도 많았는데 남자는 별로 기억이 안나고 여자는 정유미와 장소연 그리고 정소민이 무명시절에 다녀갔다. 특히 정소민은 친구가 영어 과외 하던 고등학생이었는데 프로듀서 마인드가 있던 나의 3년간의 설득에 결국 한예종 연기과 입시를 치르게 되었고 수석으로 입학했다. 어쩌면 비공식적으로 윙크 스튜디오에서 배출해낸 처음이나 마지막 연예인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지인들은 재미있어하며 윙크 스튜디오의 차기 가수나 연기자를 배출해보자 제안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재건축 때문에 건물이 헐려서 더 이상 윙크 스튜디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기를 드시며 드라마를 보시며 동시에 내게 잔소리를 하시는 어머니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난 아버지께 훅하고 오래전 연습실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소주 한잔을 쭈욱 들이키시고 캬~하시며 촉촉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셨다.

“거기 참 좋았는데...너도 좋았지? 밤마다 술 먹고 자기 좋았지? 너 요즘도 집에서 혼술하고 그러니? 뉴스에 보니 요즘 고독사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혼술 많이 했다고 하더라”

“사실 아버지께 고백할게 있어요.”

“응 뭔데? 거기서 뭐 몰래 나쁜 짓이라도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걱정하실까봐 말씀 안 드렸는데 어느 날 새벽에 술 먹다가 술이 떨어져서 편의점에 가려고 나왔는데 글쎄 복도 벽에서 불이 나고 있더라구요. 건물일 낡아서 전기배선에 문제가 있었나봐요. 그래서 소화기로 제가 불을 껐죠. 만약 그 시간에 우리가 술을 먹지 않았었더라면 전 그날 불에 타서 죽었을지도 몰라요.”

“ 고기 탄다. 어여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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