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잃어버린 마음

공통주제 <이사> ㅣ 이건우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7-02-13 오후 3.13.00.png 영화인


작가프로필 ㅣ 이건우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매니아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매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 혹은 물음표가 있는 설정 등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면, 마치 꽃에 물을 주며 어떤 나무로 성장할 지 궁금해하는 것 같이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키워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이사라는 주제를 갖고 관계의 거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몇 주변 친구들과 이사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조금만 나누어보아도 분명히 다른 지점이 나에게는 있었기에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이사란 친구들과의 헤어짐, 익숙한 환경과의 작별을 뜻하고 그것은 어린 시절 꽤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사건이었다는 것에 반해, 나에게 이사는 소풍가기 전날과 같은 기대와 흥분을 동반한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이사를 다녔던 집안의 속 싶은 사정을 알리 만무했던 어린 나에게 이사란 그러한 것이었다. 다음에는 어떤 곳으로 가게 될까? 그곳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탐험지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던 것 같다. “엄마 우리 또 언제 이사해?” 라는 내 철없는 질문에 어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영문 모른 채 혼났던 기억도 떠오른다. 둘도 없는 친구가 이사를 해 멀리 떠나기라도 하면, 출발하는 이삿짐 차를 쫓아 달음박질하는 소년의 모습은 TV 드라마나 어린이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의 친구는 다이애나가 아니었고 나 역시 앤이 아니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마다, 점점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갔고 혼자만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아이로 변해갔다. 그렇게 성장해가면서 나의 혼자 성향은 점점 단단해져갔고 그 결과,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능숙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처음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의 작은 기억 하나를 곱씹어본다. 대부분의 기억은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되었지만, 그 중 가슴 속 깊이 남아있는 대사가 하나 있다. “네가 만약 아흔 아홉 칸의 마음의 방을 갖고 있다면, 그 중 하나만이라도 온전한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와 거의 같은 대사를 정확히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도 관계에 있어서의 상처에 민감했던 것만큼,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애정을 주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버렸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소시오패스가 되어가는 것인가? 과장해서 말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의 방을 내어줄 용의가 없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집주인이 미래의 내 모습이 되는 건 아닐까. 이래서는,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세입자에게조차 매달 그들의 마음만 재촉하기만 할 것이고, 결국에 가서는 아흔 아홉 칸 방에 혼자 살며 늙어가는 독거노인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 마음을 되돌아본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익숙해질 만하면 내 마음의 방에서 떠나갈 친구보다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내 상상속의 친구(결국은 나)에게 방을 내어주는 편이 더 안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민감한 성격이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별의 아픔을 재빨리 새로운 세계에의 동경으로 덧칠하여 감쪽같이 마음을 속여 왔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이사를 할 때마다 가구 자욱이 남아있는 텅 빈 방을 확인하며 혹시라도 빠진 장난감이 없나만 챙겼지, 정작 그곳에 마음을 잃어버리고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자신의 감정에는 더욱 예민해져만 가고 타인의 감정에는 점점 둔감한 사람이 되어가 버린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해갈 수 있는 문을 찾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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