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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Nov 17. 2017

축제의 의미

KEYWORD ONE PAGE <축제> ㅣ 최미애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1997년에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도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특별활동 부서를 선택해야 했다. 재미있어 보이는 활동이 많아 꽤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최종 선택지는 영화감상부 였다. 간혹 비디오 대여점에서 뭔가 빌려봤었고, ‘주말의 영화’ 는 거의 매주 챙겨 보았던 터라, 영화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영화감상부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두어 시간 동안 보내는 비일상적인 시간 그 자체였다. 그때 보았던 영화 중에 기억나는 것이 딱 두 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그다지 영화 팬은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두 편 중 하나가 <축제> 라는 영화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 혹은 그저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 임권택 감독이 만들고 96년도에 개봉했던 영화다. <축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일가 친척들이 모여 상喪을 치르는 과정이 주된 스토리이다. 장례를 준비하는 내용 사이로,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점점 어린 아이 같이 변해가던 생전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20년 전에 한 번 봤을 뿐인 영화라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잔잔했던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테마에 ‘축제’라는 제목이 너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장례식이 끝나고 친척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아직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씩 웃으며 촬영에 임하는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영화를 보고 있을 때는 조금씩 갈등을 풀어 나가는 가족 영화로 느껴 그 장면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마지막 장면만 따로 떼어내어 자꾸 생각이 난다. 열세살의 나는 죽음이라는 명제에 골몰해 있었고, 그 때문에 ‘축제’라는 단어가 주는 시끌벅적한 이미지와 죽음을 연결시키는데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죽음을 남은 사람들이 화려하게 축하해 주는 느낌이랄까, 꽤나 쓸쓸하고 조금은 화가 나는 정경이기도 하다.


그 쓸쓸함을 떨쳐 내기 위해 이 영화 제목을 <축제>라고 붙인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축제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와 ‘축하와 제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보통의 축제는 이 ‘축하’의 의미가 크게 느껴져서 제사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다. ‘축하하며 벌이는 행사’와 ‘제사’, 혹은 ‘제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특정 기간 동안 비일상적인 목적을 위해 수행되는 행사라는 공통 조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 ‘비일상적인 목적’은 이 행사에 참여한 다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즐기거나 혹은 기리는 마음을 충분히 나눌 때 달성될 수 있다. 이 부분이 일반적인 ‘프로젝트’와 ‘축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다시말해, 축제의 핵심은 ‘사람들’ 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장례식이 축제가 될 수 있다면, 죽은 이도 그 ‘사람들’ 에 포함되어 있을 때일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향해 절을 하고 유가족을 위로 하는 시간은 짧지만, 조문객들은 대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다. 고인의 지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근황을 묻기 위해서. 고인은 그 대화하는 사람들 속에 가만히 머문다. 그 것이 내가 생각하는 죽은 이가 ‘사람들’ 속에서 함께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이제 영화 제목이 <축제>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못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쓸쓸하게 기억했다는 사실도. 20년이 지나도 이 영화를 잊지 않은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고독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열세살의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서른 넷의 나는 단지 내가 줄곧 고독했다고 믿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이라는 영화를 볼 시간이다. 그 안에 '나'는 ‘사람들’에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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