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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01. 2018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됩니까

공통주제 <눈>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됩니까


강원도의 겨울은 매우 춥다. 심지어 눈도 많이 온다. 눈이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은 강원도에서 며칠만 살아보길 바란다. 다시는 눈을 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원도 홍천 어느 시골 마을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한겨울이라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내일이면 더 쌓일지도 모른다.


꼼짝없이 눈 속에 갇힐 판국이다. 눈을 다 치울 수 없어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 정도만 눈을 치웠다.


눈 치우기가 무섭게 이웃 사람들이 술이나 한잔하자며 찾아왔다. 그들은 아껴둔 담금주를 가져왔는데 맛이 참 좋다고 했다. 


그동안 눈 속에 갇혀 있었고, 또한 너무 급조된 술자리이다 보니 안주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안주거리가 없는데요ㅜ

-안주 없으면 눈과 함께 마시면 됩니다.


햇볕이 잘 드는 평상에 앉아 술을 마셨다. 다시 사뿐사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술잔 위에도 눈이 슬며시 내려앉았다.


한잔 마시고 멀리 눈 내린 산을 바라보았다. 또 한잔 마시고 단단하게 얼은 저 계곡을 바라보았다. 


변변한 안주가 없었지만, 눈과 함께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았다. 며칠 동안 눈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시 눈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취하는 느낌이 없었다. 


이 모습을 누군가 지나가다 보았더라면 아마도 신들이 내려와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됩니까?

-물이 되겠지요

-눈이 녹으면 꽃이 됩니다.


낭만이 있는 대답이다.

아마도 눈과 함께 살면서 많은 것을 초월한 것 같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고, 뭐 꽃도 필 것이다.


저 멀리 눈 뒤에 숨어 있는 겨울아, 봄이 올까 무서워서 그렇게 숨어 있는 게냐?

눈이 녹아야 봄이 온단다. 숨어있지 말고 나와서 내 술잔 위에 눈이나 더 내려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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