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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01. 2018

눈의 미학

공통주제<눈>ㅣ한공기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꿈길을 걷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없이 새하얀 평지를 걷는 기분은. 뒤를 돌아보니 흘러간 시간의 흔적들이 여실히 찍혀있었다. 1초전, 2초전, 3초전...나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정해진 목적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신이 다녀간 자리를 구경하러 집밖을 나온 것 뿐이었다. 나이가 드니 흰색이 좋아졌다. 어릴적에는 그저 비어있는 공백이라 여기며 가치를 못 느꼈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었다. 그렇다. 나의 목적지는 바로 내 발 밑에 있었다. 완벽한 하얀색 위에 서고 싶었다. 언젠가 그녀도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왜 흰색이 좋은 거지? 우린 눈이 가득싸인 서울숲 내부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서있는 황량한 길이었다. 하늘도 하얗고 땅도 하애서 앙상한 검정 나무의 몸짓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내가 워낙 더러워서 좋아하나봐. 서양화를 전공했던 그녀는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했다. 검정도 마찬가지로. 두 사이에 존재하는 빨주노초파남보들이 진짜 색이라고 했다. 그 말에 더욱 더 흰색이 좋아졌다. 다른 색들은 칠해지는 순간, 그냥 제자리에 멈춰서있지만 흰색은 스스로 더 하애지려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기분이 든다. 즉 끊임없이 움직이는 색이라고 할까? 실제로 우리가 걷고 있던 눈길이 볼때마다 다르게 느껴졌다. 아까보다 더 하얗게 보였다. 그녀는 웃으며 빛이 바뀌어서 그런거라 했지만, 눈길이 더 하애지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난 느껴졌다. 시린 계절을 버티는 겨울나무가 겨울을 통해 강해지는 것 처럼. 흰색은 참 야무지고 기특했다. 


  어제 밤 난 집 안에서 티브이를 보고있었다. 시덥지않은 예능프로를 틀어놓고 전날 먹다 남은 케잌을 꺼내서 커피와 함께 먹고있었다. 케잌 맛은 미지근했다. 집에 온 손님들과 함께 먹을 때는 눈이 크게 떠질정도로 맛있었는데. 죽은 짐승의 사체 주변에서 맴도는 하이에나처럼 난 포크를 들고 케잌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두 세입 뜯어먹다가 난 금새 포크를 내려놓았다. 커피맛은 다행히 변하지 않았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부터 커피맛에 민감해졌다. 로스팅한지 보름이 지나면 커피맛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린다. 신맛이 더 강해지는데 그간 산화된 과정이 다 느껴진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밖에 눈이 보였다. 난 재빨리 TV를 끄고 거실등도 껐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베란다 창문이 마치 극장 스크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스펙타클한 영화 한편이 광고와 예고편도 없이 시작된 것이었다. 올해 눈을 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하늘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집은 23층이니까 지상에서 꽤 떨어진 편이었다. 나는 창문 스크린으로 가까이갔고 까만 바탕 위로 느리게 흘러내리는 하얀 점들을 붙잡으려고 유리창에 손을 댔다. 롱테이크(카메라를 끄지 않고 길게 찍은)로 찍혀진 눈오는 장면이 내 손 너머에 있었다. 그 세계로 건너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난 창문을 활짝 열었다. 휘이잉~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그 세계는 집안으로 한숨에 들어왔다. 들고 있던 머그컵 위로 아까는 보이지 않던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연기가 올라가는 속도와 눈이 떨어지는 속도가 묘하게 일치했다. 내가 살고있는 세계가 갑자기 엿가락처럼 늘어진 기분이 들었다. 베란다에 놓인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을 때 나도 모르게 매우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눈이 오는 날은 춥지 않다고 했던가. 실제 온도가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눈을 보며 따듯해지는 마음 때문일까. 내심 빠르게 스쳐지나간 올 한 해가 얄밉게 느껴졌는데 느릿느릿 착지하는 눈들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고마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풀거리는 눈송이 하나가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손등 위에 여전히 떠있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보려고 손을 코앞으로 천천히 가져가는 사이 눈은 내게 속삭였다. 우린 서로 다른 세계에 있어서 만날 수 없단다. 대신 신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눈송이는 작별인사를 하고 금새 사라졌다.  


  눈송이로 만든 이불을 덮고 자는 꿈을 꾸었다. 따듯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묘한 온도를 느끼며 이불로 만든 하얀 동굴 속을 난 걷고 있었다. 동굴 벽은 둥굴 밖의 빛을 모두 흡수하고 있어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손바닥을 벽에 대어보니 솜처럼 뽀송뽀송했다. 동굴 밖의 세상이 궁금했다. 혹시 그곳에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신이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내 평생의 소원은 신을 만나는 것이었다. 신을 만나면 묻고싶은 질문이 너무나 많았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질문리스트를 빼곡하게 적어 놓았는데 그 노트를 놓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만약 단 한가지의 질문만 허락된다면, 내가 왜 태어났는지 꼭 물어보기로 했다. 한 때는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서 두통을 앓은 적도 있었다. 속이 미식거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었다. 정확히 말하면 뒤골이 땡겼다. 세상의 모든 기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봐도 글자가 읽히지 않았고 영화를 봐도 스쳐지나가는 장면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목소리에 집중하지 못했다. 성격상 '그냥'하는 행동이 싫었다. 언제나 목적이 분명했고, 우연히 벌어진 사건들도 항상 의미부여를 하곤 했다. 탄생이란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간단한 해프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일까? 내 인생에 의미부여가 되지 않다보니 좀처럼 꾸역꾸역 살아가지 못했다. 난 늘 머뭇거렸다. 느리게 떨어지는 눈처럼 죽음을 향해 천천히 추락하는 기분만 들었다.      


  동굴의 끝에 도달하기 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얀 실크벽시 천장이 보였다. 이불 속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깜빡하고 온수매트를 켜지 않고 잤던 것이다. 따듯한 커피라도 마셔서 몸을 데우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어디서부터 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 눈이 온 것일까 의심이 들어 창밖을 보았다. 


  아파트 뒤에 있는 동산에 올라온 것은 이사오고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추리링 바람으로. 도화지에 가장 먼저 선을 긋고싶은 아이의 심정으로 한시도 늦출 수 없이 집을 뛰쳐 나왔다. 다행히도 눈앞에는 아무도 다녀간 흔적이 없는 순수한 길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발자국이 길을 만들고 있었다.  운동화 바닥이 눈과 만날 때마다 미끌거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양손을 펼치고 걸었다. 올 한 해는 매우 불안한 심정으로 보냈다. 1월에 회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 선언을 했지만, 일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간간이 했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매달 꼬박꼬박 지출하는 월세가 부담이 되었고 결국 집 나온지 8년만에 다시 집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듯 환영해 주셨지만 난 괜스레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부모님은 잊었겠지만, 집 나올 때 했던 약속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더 큰집을 사드릴게요. 그런데 돈을 한푼 모으지도 못하고 숱한 추억들만 간직한 채 돌아온 것이었다. 8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달랐다. 살도 빠지고 눈가에 주름이 늘었다. 세월의 흔적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겼다. 올해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회사를 나오니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모험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가장 큰 수확은 소설을 다시 쓰게되었다는 것이다. 내게 소설을 가르치는 윤후명 선생님은 언제나 말씀하셨다. 인생 별것 없어요. 그래서 흔적을 남겨야해요. 내가 살아있었다는 흔적이 내 존재를 증명합니다. 삶은 그저 '연결'의 연속일 뿐입니다. 소설도 문장의 연결이듯이. 그 '연결'이란 단어가 간밤에 온 눈처럼 내 마음에 차곡차곡 싸이고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최근 자살한 아이돌 스타의 유서를 보았을 때, 유독 그가 '행복'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그 '연결'이라는 말을 간절하게 입 속에서 중얼거렸다. 마치 기도문을 외우듯이. 기대를 많이할수록 실망도 크다. 꿈이 원대할 수록 추락의 고랑도 깊어진다. 더군다나 그 아이는 많이 이루었고 누구나 그의 삶을 동경했음에도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내 손등에서 사라졌던 티끌만한 눈송이가 어느새 이렇게 세상에 쌓인 것처럼 작은 연결들은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눈이 떨어지는 속도가 참 맘에 들었다. 급하게 채근하지도 않고 여유로웠다. 오늘은 어제와 내일의 연결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연결의 힘은 삶을 잇는 탯줄처럼 강하고 질긴 것이다. 나와 내 숨과의 연결, 나와 타자와의 연결이 내 삶의 전부일지 모른다. 그 연결 속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오색 찬란한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서. 간밤에 난 동굴을 통과한 기분이 들었다. 신을 만나지 못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진짜 세계가 어쩌면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운동화 속으로 새어 들어온 시린 눈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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