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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01. 2018

짝사랑

공통주제<눈>ㅣ 최미애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눈이 올락 말락 하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자꾸만 창밖으로 시선이 간다. 아직 차가 없어서인지, 혹은 철딱서니가 없어서인지, 나는 그저 눈이 좋다. 눈이 오는 날 창밖에 내리는 눈 구경하면서 커피 마시는 것이 좋고, 더운 김이 솟는 오뎅 바에서 사케를 호록호록 마시는 것은 더욱 좋다. 얼마 전에는 밤에 눈이 온다고 하여 퇴근 후 저녁도 거르고 망원동에 갔다. 새로 좋아하게 된 카페가 있는데, 그곳 창문에서 눈이 오는 풍경을 꼭 보고 싶었다. 카페에 도착하여 핫초코를 한 잔 시켜 창문 옆 자리에 앉았다. 추리소설을 메인으로 하는 북 카페인지라 읽고 싶은 책은 넘치게 있었다. 셜록홈즈 시리즈 중 <네사람의 서명>을 읽으면서도, 마음은 내내 창문 밖으로 향했다. 힐끔힐끔, 못생긴 맞은편 가게만 보인다. 문 닫을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도 눈은 오지 않았다. 눈 뿐이랴, 보고싶은 사람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떨치고 애써 웃으며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러 가면서 짝사랑 같구나 하고 생각한다.


 눈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별 건 없다. 그저 하얗게 눈이 덮인 주변의 풍경이 평소와 다르게 단정해 보이고, 눈이 내리면서 가로등 불빛에 부딪혀 별처럼 빛나는 것이 예쁘고, 밤에 눈이 울퉁불퉁 쌓인 위로 그림자가 드리울 때면 파르스름한 기운이 얽혀 어느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이 신비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강풍을 동반할 때도 있지만, 보통 눈이 오는 날은 그 이전의 쌀쌀맞은 기온이 한풀 꺾여 어쩐지 조금 포근한 날씨를 동반할 때가 많다는 것도 좋아하는 이유다. 하지만 눈을 좋아하는 것 치고 눈에 얽힌 추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눈에 얽힌 추억 이야기가 낭만적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직장동료 중 한 명이 해 준 이야기다. 여의도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는데,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과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고 그 사람이 추천한 샹송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거짓말같이 눈이 소담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손에는 커피 하나씩 쥐고 있었을 테지. 이국의 우아한 노래를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들으며 걸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것도 아닌 그 장면이 마음에 흐뭇하게 남아, 조금은 질투 나기도 했다.


 눈에 대한 직접적인 추억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일화는 하나 있다. 아마도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창 샘솟듯이 소설을 쓸 때였다. 짧고 슬픈 소설을 하나 썼다.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남편의 고향인 눈이 많이 내리는 마을에서 시아버지와 둘이서 극도로 조용하게 삶을 살아가는 내용으로, 내 소설 속의 눈은 꽤 예쁘게 그려졌던 것 같다. 모처럼 글이 마음에 들게 나와서, 군복무 중이던 친구에게 프린트해서 보내 주었다. 입대하기 전에 내 글을 무척 좋아해 주던 친구였다. 친구는내 글과 편지를 받고 곧 답장을 보내왔다. 서로 다른 곳에 있으면서 똑같이 눈을 소재로 소설을 쓰다니 신기한 일이다, 라며 친구도 자신이 쓴 글을 보냈다. 친구의 소설 속 눈은 일종의 괴물 같은 존재로, 무시무시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그럴만 했다. 그 친구는 철원에 있었으니까. 지금 그 친구는 12월 평균 강수일이 8일인 애틀랜타에서 예쁜 아내와 딸과 셋이 살고 있다. 이국에서 엔지니어로서 살고 있는 그 애는 자기가 썼던 그 소설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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