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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03. 2018

이별과 재회

피아노치는 간호사 ㅣ 김혜연

간호사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연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냉정과 열정사이_The Whole Nine Yards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오빠의 베스트 프렌드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친구를 퍽이나 좋아하는 오빠의 허탈한 기운은 아무 일 없는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하여 처음 글을 썼던것 같다. 이별에 대한 시였다.

"이별이 있다면 또 다른 만남이 있음을 기억해요"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헤어지지만 훗날에 오빠와 오빠의 친구가 정말 멋진 모습으로 만났으면 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했던것 같다. 이별의 아픔은 잘 이해하지 못한채.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여러해 동안 함께 지냈던 내 친구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학교의 같은 동아리 회원으로 만나게 되어 나는 피아노를, 친구는 플룻을 연주했던 우리는 같이 유학가자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는 갑자기 유학을 떠나게 되고 혼자 남겨지고 나니 한동안 방황 아닌 방황을 했던것 같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생의 어떤 목적를 찾게 되었기에 지금은 그 때가 나를 위한 무한한 축복이었다 여기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었는지. 이별이라는 것이 마음에 담았던 만큼 힘든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나날이었다. 첫번째 이별이었으니까.


그 후로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인간사에 어긋나지 않게 사랑도, 우정도 마음에 품으며 살아왔다. 그러는 가운데 만났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나는 여주인공과 닮은것 같았다. 과거를 차갑게 잊어버린 아오이처럼, 마음에 사람을 쉽게 품지도 않고 품었을 때는 쉽게 끝내지도 않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쉽게 돌이키지 않는 점에서... 오랜시간 좋아했던 사람도 그 마음이 접히고 나면 지나간 일기장의 기록으로 바뀌고, 그 때의 마음도, 나 자신도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남자는 첫사랑을,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정의에 성실하고 그렇듯 보편적인 사람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아오이에게 준세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가 남고 아픔이 남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랑한 사람과의 헤어짐은 깊이 패인 자국이 남았을텐데 다시 그 상처를 꺼내어 본다는 것도, 다시 만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대신할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 아오이. 이 영화에서 내가 참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장면은 그들이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밀라노 역에서 그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따뜻하면서도 풋풋했다.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준세이의 모습은 여전히 아오이와 함께한 과거를 잊지 못하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고, 아오이는 이젠 지난 과거와 함께 그동안 숨겨만 두었던 마음을 가지고 정말 준세이에게로 다시 다가가고 있는듯하여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상처가 깨끗이 사라지는 순간이었고, 죽었던 과거가 살아나는 순간이었고, 서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들까지도 채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래, 그들의 사랑은 실은 끝났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중이었던 거였다. 


재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친구가 오랜시간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만났을 때 1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은 함께했던 학창시절 덕분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되어 각자의 삶을 살다가도 가끔 만나게 될때면 포근한 지난날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것이 참 큰 힘이 되는것 같다. 하지만 함께하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고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우리는 함께했던 학창시절의 교차점을 남긴채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문득 '만약 진행중인 사랑인 사람을 만난다면 그 긴 공백도 함께 했던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에 아마 서로가 그랬다면, 그 공백은 바다같지 않고 대기와도 같을것이다. 끝난 사랑도 접힌 사랑도 아닌 언제나 진행중인 사랑. 잠시 아오이과 준세이 같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본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마도 많이 달라져 있을 내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일것 같다. 아직도 진행중인 사랑일테고 끝나지 않을 사랑일테니까.


혹시 헤어졌으나 다시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땐 꼭 일직선을 그릴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보는 밤. 어젯 밤, 35년만에 볼 수 있었다고 하는 블루문, 블러드문처럼, 존재와 존재가 명중하는 순간도 그렇듯 오랜 시간 돌아서 일치하는 기적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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