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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29. 2018

3월의 눈

250ml 다이어리 ㅣ 한공기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방안이 컴컴해서 새벽인줄 알았다. 베개 옆에 뒹구는 스마트폰을 켜보고  11:00이라고 써있는 숫자에 놀랐다. 이불을 발로 차고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착지를 했다. 기상할 때 컨디션을 좋게 하려고 침대 옆에 깔아놓은 뽁뽁이에 발이 닿는 순간, 구름 위로 사뿐히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구름을 흐트러뜨리는 듯한 느린 걸음으로 거실로 나가보니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엄마? 아빠? 가족들을 한명씩 불러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모두 외출한 듯 했다. 베렌다 창밖에서 눈이 빗줄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두 눈을 의심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보았다. 슬러쉬처럼 물반 얼음반인 눈이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이게 실화일까? 실감이 안 나서 손을 빰에 문질러 보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3월의 눈이다. 난 소파에 앉아 창밖의 눈을 무심하게 쳐다보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아해 했다. 겨울이 사라지고싶지 않아 최후의 발악을 하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는 눈이었다. 겨울 내내 입었던 유니클로 패딩을 세탁소에 맡긴 것이 후회되었다. 오늘은 뭘 입고 나가야 할까, 걱정이 들었다. 패딩 좀 그만 입어라. 노숙자 냄새 난다. 어머니의 핀잔에 어제 세탁소에 가져다준 패딩이 그리워졌다. 하루만 더 참을걸. 실제로 난 올겨울 패딩 속에서 보냈다. 외출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지인들과 거하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도 패딩을 입은 채로 잡에 들었다. 패딩이 마치 침낭같이 느껴졌다. 유니클로에서 패딩을 살 때 내 몸보다 한 치수 크게 산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소파위에 누우니 저녁에 홍대에서 프리랜서 모임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프리랜서 및 1인 기업가들이 모여서 각자의 고충을 나누는 모임이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알콜중독자 모임> <백혈병 환자 모임>같은 치유모임과 무척 유사했다. 나는 톰입니다, 하면 모든 사람들이 하이 톰,하고 나는 여기 오는 것을 매우 망설였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저같은 사람이 많아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하면 모든 사람들이 잘 왔어요, 알러뷰 톰...하는 그런 분위기. 모여서 특별한 목적행위를 하지않아도 있는그대로 그냥 좋은 시간을 보내는 모임이었다. 7시반에 만나면 우린 보통 11시에 헤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었기에 오늘도 또 가기로 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내가 발표를 하는 날이다. 모임에서는 자신이 잘 아는 전문영역에 관한, TED를 한다. 오늘 내가 준비한 주제는 <마음>이다. 10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군더더기는 버리고 요점만 간단히 전달해야 한다.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해보았다. 


여러분 본인의 마음에 대해 잘 아세요? 아시는 분 손좀 들어주세요...(예상 1명 이하)

우리가 자신의 마음에 무딘 이유는 평생 갑옷을 입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갑옷이란 전쟁터에서 나가 싸울 때 유용한 도구이죠?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쟁터와 같기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딱딱한 갑옷을 입는 것이죠. 문제는 그 갑옷이 본인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득 창밖의 빗발치는 눈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갑옷을 세탁소에 맡겼다. 집밖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혹시나 세탁이 끝나지 않았으려나? 아무래도 세탁소에 들러서 확인해봐야겠다. 난 내 갑옷을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갑옷에 의존하지 않고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듯한 봄이 오면 그럴 수 있으려나?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바람과 해가 선비의 옷을 벗기는 는 시합을 했는데 결국 해가 이겼다는...우리가 소통을 할 때 결과에 집착하기 보다 차라리 상대방이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아닐까. 오늘 발표때도 너무 잘하려하기보다 사람들의 흥미만 유발시키고 내려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연애를 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진실해진다. 즉 갑옷을 벗어버리고 겉옷도 속옷도 훌훌 벗어버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죄-수치심이 아닐까...결국 진실하지 못하면 사랑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올 봄에는 연애 좀 하고 갑옷좀 버려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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