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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29. 2018

봄이 오면

공통주제 <봄>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서 완연한 봄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봄은 항상 그렇단다. “내가 왔어요” 라고 하지 않았지만, 슬며시 다가왔다. 봄이 오면 즐거운 게 여러 가지가 있다. 봄이 오면 꽃구경이 일품이다. 몇 살인데 벌써 꽃구경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마는 꽃구경은 남녀노소가 구분이 없다. 전국을 하얗게 물들인 듯한 벚꽃축제는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어른들은 아름답게 핀 벚꽃을 보면 즐거워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핫도그나 꼬치를 먹으며 즐거워한다. 어렸을 적 집 근처 공원에 벚꽃이 필 무렵이면 항상 축제가 열렸다. 아버지는 퇴근한 뒤 술이 한잔 생각나서 그런지 다 같이 벚꽃축제에 가자고 했다. 벚꽃축제도 여느 축제와 마찬가지로 난장이 열리기에 이것저것 먹고 즐길 것들이 많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해 하며, 나와 동생은 동전 던지기나 게임을 하며 즐겼던 기억이 난다.


봄이 오면 야외 활동이 많다. 특히 학교에서는 춘계 운동회나 체육대회를 하는데, 대회 전날에 설레어서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줄다리기 우승하면 햄버거를 사준다고 해서 심판 모르게 운동부의 힘을 빌려 줄다리기를 우승했던 기억과 단체티를 맞추는 비용을 아끼려고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의 힘을 빌려 30여 벌의 티셔츠에 락카와 매직으로 유명 상표 로고를 그려 넣었던 것도 생각난다. 심지어 봄에는 마라톤 같은 야외 스포츠도 왕성하다. 겨울 동안 춥다는 핑계로 운동과 거리를 두다 보니 몰라보게 체중이 불어났다. 봄이면 늘어난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려고 마라톤을 신청한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두 발에 온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정말 잘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든다. 그리고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힘껏 달리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사랑스럽다. 아마도 그때 누군가와 눈빛이 마주치면 금방 사랑에 빠질지도 모를 것 같다.


봄이 오면 나들이나 소풍도 빼놓을 수 없다. 학창시절 수학여행도 봄철에 갔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수학여행을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봉사활동을 하거나, 소규모로 테마형 체험식 여행도 있다고 하니 이제는 수학여행에서 봄을 즐기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수학여행을 각각 경주, 설악산, 제주도로 갔으니 정통 코스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최근에 방송을 보니 봄철 경주, 설악산, 제주도는 정말 최고로 아름다운 것 같다. 봄이 오면 공원 나들이도 참 좋다. 공원은 녹지가 많기 때문에 화사한 봄날에 녹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히 대공원에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판매하는데,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김밥에 맥주를 같이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봄이 오면 야외에서 낮술을 즐기기 좋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대학 시절 봄철에 캠퍼스는 삼삼오오 잔디밭 위에 둘러앉아 낮술을 즐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신입생 때는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런 것을 꼴불견으로 바라봤지만, 술을 즐기게 된 다음에는 잔디밭 낮술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점심 대신에 막걸리를 마시는 우리에게 교내 방송에서 ‘너무 과음은 하지 마세요’라고 알리는 아나운서의 풋풋한 목소리는 누가 사연을 보냈는지 궁금한 것도 잊은 채 술맛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제는 봄이 와도 꽃놀이, 마라톤, 나들이, 낮술을 즐기기가 생각보다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미세먼지는 봄철의 추억마저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요즘은 미세먼지가 봄에 대한 추억을 만드는 것도 방해하고 있으니 삶이 더 팍팍할 것만 같다. 우리는 이제 미세먼지 때문에 꽃구경도 실내에서 하고, 운동도 실내에서 하고, 나들이도 실내에서 하며, 낮술도 실내에서만 즐겨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봄이 와도 즐겁지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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