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주제 <봄>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2년 전인 2016년 4월에 봄이란 주제로 글을 썼다. 내가 활동하는 글쓰기 모임 현 소소하다 구 파운틴의 4월 공통주제였다. 모든 멤버가 봄이란 주제를 받아들었다. 저마다의 봄을 글로 풀어냈다. 2년만에 같은 주제를 받아드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 봄을 이방인의 신세를 드러내는 소재로 사용했다. 재밌는 시도였다. 같은 주제를 2018년 버전으로 쓰면 재밌을 것 같다. 20대 나에게 30대의 저력을 보여주리라.
나의 봄 / 2016년 4월
가끔 인터넷으로 음원 순위를 확인한다. 영어권 국가에 살지만, 빌보드 차트엔 딱히 관심이 없다. 케이팝 차트를 모니터에 띄우고 스크롤을 내린다. 외국 생활이 5년이 돼가는 시점에서도, 김치를 달고 사는 김치남의 정체성은 확고하다. 두유노싸이? 레파토리가 구닥다리가 된 시점에도 속으로 싸이는 죽지 않았다고 외친다. 어떤 케이팝 전사들이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위를 훑어본다. 역시 봄은 봄이다. 당돌하게 봄이 좋냐 묻는 곡이 차트 맨 위를 차지하고 있다. 화면을 조금 내리니 벚꽃 엔딩이 인사를 하고 있다. 5년이 지났는데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여의도 공원이 차트 뒤편으로 보이는 것 같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 한국에 찾아왔다. 여기는 무더위에 지친 몸이 한숨 돌릴 참이다. 정반대의 계절 속에 from Korea 택을 단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한국 방송을 보고, 한국말로 쓰인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국적을 잊고 살 수가 없다. 추위가 시작되는 호주의 4월, 그래서 계절을 역행해 새로움이 가득한 봄날을 느낀다. 전기장판을 꺼내며 봄 노래를 듣는 아이러니란. 일본엔 '붉은 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말하는 단어인데, 먼 바다를 건너 실 한 올이 팽팽하게 느껴진다.
외투 없이는 밖을 나갈 수 없는 시기가 왔다. 거리를 걷다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놀란다. 여름 내내 땀 닦아 주던 고마운 친구의 변심은 이리도 빠르다. 수족냉증이 있어, 추운 날이면 손 발이 차가워진다. 차가운 발이 겨울이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창백한 손으로 벚꽃 엔딩을 재생한다. 가사가 봄바람을 부르고, 흩날리는 벚꽃 잎이 손등에 내린 듯 촉각을 자극한다. 가족 친구들은 이 계절을 즐기고 있겠지? 모두의 소맷자락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길 바란다.
얼마 전에 친구가 영상 통화를 걸었다. 다른 친구와 둘이서 유원지로 꽃구경을 갔다. 멀리 있는 내가 안쓰럽다며 풍경을 보여준다.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봄이 존재를 과시한다.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을 보니, 유난히 추웠다던 이번 겨울이 이미 저 먼 곳으로 떠난 듯하다. 아무래도 머릿속에 있는 나의 봄은 한국의 봄이다. 이 밤의 끝을 잡았던 20년 전 어느 가수처럼, 몇 년이 지났음에도 잡은 한국의 봄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던, 봄은 4월이다. 옆에 있는 친구도 마찬가지인 듯 초겨울의 봄을 즐긴다. 따뜻한 외투를 걸치고, 친구와 봄 길을 나선다.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보낸 따뜻한 봄을 떠올린다.
아이폰4s가 기술의 첨단을 걷던 시기, 한국에서 마지막 봄을 보냈다. 들뜬 마음을 주체 못 하고, 하루가 무섭게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는 대부분 석촌호수였다. 가디건을 목에 두르고 벚꽃 구경, 사람 구경을 하며 걸었다. 다리가 아파질 때쯤엔 호숫가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다 까마득한 미래가 이야기의 화제가 된다. "우리 30살 이 무렵에는 뭐 하고 있을까?"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전 세계를 안방처럼 누빌 자신을 그렸다. 내 서른에 성공은 필수 전제였다. 친구에게 호기롭게 말을 건넸다. '그때는 고급 일식집에서 초밥이랑 사케 사줄게.'
꿈이 반은 이뤄졌다. 다만 폭스바겐 할아버지의 폐차 세레모니가 다음 주에 있을 예정이고, 여러 문제로 사업은 정체기를 보내고 있다. 빚 없는 게 어디냐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제는 일식집에서 13불짜리 뎀푸라 우동과 해피아워 특별 할인으로 3.9불에 아사히 맥주를 마셨다. 아이폰 7의 출시가 가까워졌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봄은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는 것. 다시 긍정적으로 다음 몇 년의 봄을 그린다.
올해도 먼발치에서 맞는 봄이다. 이번 봄엔 염원의 석촌호수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것 같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온다. 유튜브에서 케이팝 차트를 찾아 재생한다. 스크린 속 벚꽃을 보며 아쉬운 대로 나의 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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