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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ug 03. 2019

길위의 인생

비비_ 노숙자

Editor's Letter


 누군가에게 묻고싶다. '지금까지 살면서 직업란에 '노숙자'라고 써있는 것을  경우가 있는가?' 아마  말고  세상에  한명도 없을 것이다나는 보았다그런 사람을.  자신이 노숙자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단박에 부숴버리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그의 이름은 비비(非非). 노자의 도덕경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따왔다고 하는데 언뜻봐도 그는 '길위의 철학자'같은 분위기를 풍긴다오늘 비비를 만나는 시간은 어쩌면 철학수업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평생 노숙자의 삶을 살고있는지 정말 그에게 묻고싶다


World Homeless 비비


보통 사람들은 '노숙자'를 보면 "저걸 어째..."하며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숙자'들도 보통 사람들을 보며 똑같이 "저걸 어째..."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숙자들이 노숙자가 된 것은 환경적 요인 때문에 수동적으로 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노숙자들이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제도를 벗어나서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일반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정리해드리면 일반 사람들은 집안에 길들여진 '집고양이'이고 노숙자는 집을 탈출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고양이' 입니다. 


비비의 스토리텔링



언제부터 노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흠...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집'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대학을 다닐 때도 동기 집에 얹혀 살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와이프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아 전 대학 다닐 때 영어강사로 한국에 온 미국인 여자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녀를 따라 미국에 가서 살다가 그녀가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난 후 전 쫓겨났습니다.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숙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도 계속 노숙 생활을 하고 있으니 고등학교 졸업후 쭈욱 노숙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통 '노숙'이라면 길에서 잠을 자는 사람 아닌가요? 비비님이 정의하는 '노숙'은 좀 다르네요.  


사람이 어떻게 길에서만 살 수 있겠어요. 서울역 앞에 있는 노숙자들도 역사 안이나  지하철 역 안에 머물기도 한답니다. 제가 생각하는 '노숙'은 일종의 디아스포라 입니다. 고정된 집이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것을 말하죠. 



그럼 왜 비비님은 고정된 자기만의 집이 없었나요? 


별 이유가 있나요? 전 모아놓은 재산이 없습니다. 제가 돈이 없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살지 않아서입니다. 누구는 저에게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 성격상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저 현재에 머물며 현재를 즐길 뿐입니다. 


마치 철학자같은 말씀이신데요, 혹시 철학을 전공하셨나요? 


아니요, 농업과를 전공했습니다. 


농업과를 전공했다면 농사에 취미는 없으신가요? 


전혀 없습니다. 전 육체노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외네요, 비비님은 딱 전형적인 농부 외모인데요. 


네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농사는 싫어하지만 전 지극히 자연주의자입니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처럼 말이죠. 물론 소로는 산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살았지만, 전 그저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을 즐길 뿐입니다. 



노동을 안하고 도대체 어떻게 삶을 연명할 수 있죠? 


제가 살아가는 방식은 타인에게 기생하는 것입니다. 서울역 앞에 있는 노숙자들도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노숙을 한다고 꼭 길위에서 자는 것은 아닙니다. 지인의 집이나 돌봄센터같은 곳에서 살 수도 있는 것이죠. 특히 지인의 집에서 살 때는 청소나 빨래, 설겆이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리는 안 하시나요?


네 요리는 안 합니다.  집주인이 해주면 얻어 먹는 것이고 안해주면 그냥 굶습니다. 



영양섭취가 잘 안되서일까요? 굉장히 마르신 것 같은데...


네 전 가난한 시골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잘 먹지 못했어요. 어릴 때부터 앙상하게 말랐구요.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먹었다고 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비비님은 물욕이 전혀 없는 분 같네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죠? 


제 이름이 비비(非非)잖아요. 살면서 뭘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예 기대도 안 해요. 대신 주변 사람들과는 친밀하게 지냅니다. 제 재산은 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을 많이 알면 어떻게든 살아게게 되더라구요. 저의 제일 큰 장점은 '불쌍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면 스스로 도와주시더라구요. 


제가 느끼기에 비비님은 일종의 사기 캐릭터인 듯 합니다. 어쩔 때는 되게 소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쩔 때는 굉장히 지혜로운 철학자처럼 보이거든요. 눈빛이 확 변한다고 할까요? 비비님의 삶의 철학이 궁금해지네요. 


 

철학자라니...너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물론 제가 오랫동안 노숙을 하면서 생긴 철학이 있기는 합니다. 사람들이 제게 많이 물어봅니다. 노숙자의 생활이 어떤지. 그럼 저는 <노숙가이드>를 알려줍니다. 건강한 노숙자가 되려면 첫째,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노숙자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의존하며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을'의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래도 더 얻어 먹을 수 있거든요, 대신 두번째, 자존감은 높아야 합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모두 소중합니다. 즉 '쓸모'로서 인간을 판단하는 '자본주의식 사고'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런 마인드만 갖춘다면 저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노숙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어느 나라에 있나요?


베트남에서 노숙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베트남에서 사귄 현지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에서 옷을 판매하는 사람이 제일 많이 도와주는데 전 그를 위해 의류 모델일을 해주고 있습니다. 



마르고 키가 굉장히 크셔서 정말 옷테가 잘 납니다. 전업 모델로 활동하셔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별로 바빠지고는 싶지 않아요. 전 가만히 앉아서 멍때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구는 그것을 명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전 그런 어려운 말을 쓰고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지금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 뿐입니다. 물론 돈이 좋은 것은 압니다. 돈이 많아지면 기회가 많아지고 기회가 많아지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입니다. 그런게 과연 돈 많은 사람은 다 행복할까요? 분명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인간은 한없이 쾌락을 쫓고 결국 쾌락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은 돈을 원하는 이유는 많은 쾌락을 원해서 입니다. 저는 그런 쾌락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남들처럼 열심히 노동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비비님이 대단한 것은 일반 노숙자가 아니라 월드 홈리스인데요, 어떻게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노숙하게 되었나요? 아니 그 이전에 비행기표는 어떻게 구하셨나요?


한국에 있을 때는 '돌봄센터'에서도 살았고, '서울역'에서도 살았습니다. 돌봄센터는 매우 안전한 곳이지만 그곳 안의 삶이 너무 규칙적이여서 제게는 군대를 다시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서울역으로 갔지만 일종의 매너리즘을 느꼈습니다. 길고양이들처럼 자유롭지만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시 제도화된 사회 안으로 들어가려해도 마음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제 3의 대안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한국 노숙자가 아닌 세계 노숙자가 되자. 그래서 세계를 떠돌아다니게 된 것이죠. 히피처럼 말이죠. 비행기표 구입은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주어서 가능했던 것이죠. 참 감사한 일입니다. 



비비님은 정말 인복이 많네요. 혹시 본인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신 적은 없나요? 항상 타인에게 도움만 받고 사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타인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전 모두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나이 외모 성별 재산 가리지 않고 전 모두에게 친숙하게 다가갑니다. 실제로 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사람들은 절 좋아해주더라구요. 아마도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방식 아닐까요?


비비의 오리지널리티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 기묘한 환타지를 느낍니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물질이 중심에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머물고 있는 베트남도 점점 한국과 비슷해져서 걱정이긴 하지만, 전 그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문명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전 저의 속도를 지키고 싶어요. 모두가 뛸 때 전 그냥 천천히 걷겠습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기에... 전 누가 뭐래도 그냥 자연스럽게 제 속도를 지키고 싶습니다. 제 오리지널리티는 워킹맨이 아닐까 싶어요. Work가 아니라 Walk요.


Editor's Choice


참 모순적이게도 비비는 스마트폰도 있고, 라인프렌즈의 브라운을 좋아한다. 즉 문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적어도 문명에 압도당하며 살지 않는 그이기에 나도 참 닮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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