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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라 Nov 18. 2020

인간실격.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회복탄력성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인간실격을 선고한다. 저자 다자이 오사무가 네 번의 자살 미수 끝에 다섯 번째 자살 시도로 생을 마감했으니 인간실격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인간의 존재에 실격을 논할 수 있나?  


 1990년대 중반 강원도에 사는 한 부부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가 건강하다고 하였지만 태어난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다. 부부는 다운증후군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의사로 인해 자신들이 장애아를 출산하였으므로 이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양육비 상당액을 배상하라고 주장하며, 아이가 원고가 되어 “당신의 실수로 내가 태어났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이른바 ‘잘못된 삶(wrongful life)’ 소송이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대법원 판결은 말한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그 가치의 무한함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인간 또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존재가 타인에 대하여 자신의 출생을 막아 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또한 장애를 가지고 출생한 것 자체를 인공임신중절로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법률적으로 손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2015년 11월 13일, 평범한 가장이었던 앙투앙 레리스는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으로 아내를 잃었다. 그는 고통 가운데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테러범들을 향해 편지를 썼는데, 페이스북에 게재된 이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지난 금요일 밤, 당신들은 특별한 생명을, 내 일생의 사랑을, 내 아들의 엄마를 앗아갔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분노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들이 누군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은 죽은 영혼일 뿐이다. … 나는 내 분노를 당신들에게 선물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은 당신들과 똑같이 무지에 굴복하는 것일 테니. 내가 두려워하고, 같은 나라의 국민들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기를 바라겠지만, 당신들은 실패했다. 

 물론 나는 애통함으로 산산조각 났다. 이 작은 승리는 당신들에게 양보하겠다. 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내가 매일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당신들은 결코 갈 수 없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과 나, 우리는 두 사람뿐이지만 이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도 강하다. 더 이상 당신들에게 쏟을 시간이 없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들 멜빌에게 가봐야 한다. … 우리는 평소처럼 함께 놀 것이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는 평생 동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 당신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이 아이의 분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담담하게 쓰인 이 편지는 슬픔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슬픈 것이다. 다만 고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슬픈 세상에서 슬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슬픔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 밖에 없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사실은 당장에 깨닫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행복해진다.” 

-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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