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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BADA Aug 06. 2015

호접몽 <胡蝶夢>

소설사진 : 한 장의 사진으로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 / 001



호접몽
胡蝶夢

열여섯 지서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구분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길어졌던 해가 조금 이른 시간에 늘어지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가 온 것이다. 아직 매미의 울음소리도 그치지 않았고, 나무의 짙은 잎사귀도 떨어질 채비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분명 지금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였다. 두고 봐라. 며칠 지나지 않아. 밤까지 이어지던 매미소리가 낮에만 들리기  시작할 거고, 그 뒤를 이어 새벽의 이야기꾼은 귀뚜라미로 바뀌어 있을 테니깐 말이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열여섯 지서는 방과 후에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들은 방과 후 활동이다, 학원이다, 연예인처럼 바쁜 스케줄을 따라 해가 다 져서도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할 여유도 없지만 지서는 반대다. 아니, 이제는 그렇다는 것이다.      


한때 도시에서 살던 열두 살 지서도 연예인처럼 살았다. 엄마가 깨워주는 목소리에 일어나서 씻고 엄마가 차려주는 유일한 밥을 먹고 엄마의 출근길에 함께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활동도 하고 피아노 학원, 발레학원, 수학과 영어학원을 번갈아가며 다녔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야근하고 들어오던 아빠의 차를 타고 집에 왔고, 학교 숙제를 마치면 상으로 TV 속 연예인들의 나와 같은 삶을 1시간 정도  시청할 권리도 없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혼 한 열 세 살 지서는 3년 전부터 외할머니와 시골에 살고 있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다니는 학교가  익숙해질 무렵, 지서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구분하는 법을 꿈에서 배웠다.   

호접몽 ㅣ 2013, 미발표 ㅣ 다중노출 ㅣ 프린트 사이즈 미지정 ㅣ Original Print 1/? l   Estate Print ∞

아무리 노력해 봤지 하루의 일과가 오후 5시면 끝나버리는 열네 살 지서는, 원래 한옥이었던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파란색 플라스틱 기와를 얻은 집에서 할머니의 보물 1호인 번쩍번쩍 윤이 나는 대청마루에서 늦여름의 오수를 즐기는 시간이 좋았다. 한여름의 시골은 극과 극의 체험이었다. 오래된 건물들은 낮았고 나무라도 없는 곳은 모든 것이 밝고 뜨거웠다. 곳곳에 그림자도 많고 어느 건물이나 에어컨이 나오는 도시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 그러나 그런 불구덩이 같은 세상에도 도피처는 있기 마련이다. 바로 할머니의 대청마루.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그 곳에 누워 있으면 몇 백 년쯤 전부터 보관해 놓은 서늘함이 살갗을 꺼끌꺼끌하게 쓰다듬었고, 잠시 더워질라 치면 산들산들한 산바람이 부드럽게 땀을 훔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일 나갔다 해가 질 때쯤에야 돌아오시는 할머니를 기다리던 열다섯 살 지서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대청마루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부터 집까지 걸어오는 20여분의 시간은 지서에게 대청에 잠시 누워 한 낮의 오수를 선물하는 귀한 노동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열여섯 살 지서는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나는 열세 살 지서였는데. 잠시 주변을 돌아 본 열여섯 살 지서는 그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조금 가을 쪽으로 기운 어느 날. 여느 날처럼 할머니를 기다리던 열세 살 지서는 뚝뚝 끊어지는 매미 소리와 점점 힘을 더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모두 멈춘 어느 순간. 대청마루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바람도 잠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아직 해님이 낮 그림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것이 그림자라고 보기엔 너무 붉게 늘어지던 그 순간. 붉은 노을이 잠시 동안 낮과 밤의 경계를 구분 지으려는 그 순간.     


나비가 홀로 날고 있다. 마당에 핀 희고 노란 망초 꽃을 이리저리 널을 뛰며 엄마 품을 헤매는 아이처럼 그렇게 홀로 날고 있다.        


열네 살 지서와 열여섯 지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을 속 땅거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야가 왜 이런 디야? 불도 안 쒀놓고. ······지 에미도 가끔 그러더니.”     


열여섯 지서가 고개를 들자 대청마루 위의 백열전구가 따듯하게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이제 가을이 왔는가보네. 눈물바람이 드는 것을 보니. 꿈이여 지서야. 벌건 놀이 꺼지먼 꿈처럼 다 지나가는 거여. ······밥 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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