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진 ㅣ 어느 날, 카메라에 담은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출품한 사진이 한 지역 언론사의 꽤나 유서(?) 있는 (올해 19회째를 맞이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 사진대전에서 덜컥 금상(최고상)을 받아버린 필자는 상당히 고무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금상(지금은 다시 대상으로 부른다.)에는 상장과 함께 무려 500만원이라는 상금이 함께 주어졌다.
주최측은 원천징수 3.3%를 하고 남은 480만원이 넘는 현찰+수표를 볼드먹인 궁서체로 <상금>이라고 큼직하게 쓴 봉투에 담아 내 손에 쥐어줬다. 당일 동행한 꽃돌이 한명에게 거하게 밥을 사고도, 470만원이 남았다. 이래저래 아는 분들과 감사한 사람들에게도 식사를 대접하고 기분 좀 내고 나니 어라? 내 수중에는 앞자리가 3으로 바뀐 상금이 들려 있었다.
“이, 이러면 안 돼!”
이 돈을 이렇게 낭비할 수는 없지! 라는 각오와 함께, 정신차려보니 난 두 번째 DSLR 카메라와 그 동안 가지고 싶었던 렌즈 몇 개를 상금과 맞바꿔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로 산 카메라로 진짜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사진들을 찾아보려면 날짜별 내용별로 나누어진 수백 개의 폴더를 열심히 뒤져야 할 정도다. 물론 건진 사진들은 별로 없다. 그냥 내 눈에 뭔가 특이하다 싶은 것은 찍고 보는 상태였기에 심도 깊은 주제와 그 주제를 형상화해내는 구도 및 조명의 내공은 일체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많이 찍었다.
그리고 카페를 한번 말아먹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한 달에 수천 장의 사진들을 편집하면서 포토샵도 많이 늘었다, 또 초반에 엉망진창이던 사진들의 구도와 주제 의식 부재가 한눈에 보였는데, 그때부터 나름 주제를 잡고 사진을 찍는 연습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지금 필자의 모든 수준은 그때 만들어져서 거의 한두 걸음 더 걸어온 것에 불과 한 것 같다.
당시에, 운영하던 카페를 순댓국밥보다 더 맛있게 말아먹고, 자취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카메라와 렌즈만 옆에 끼고 사진을 찍었던 그 때. 9%의 사진가의 길에 가장 근접했던 그 시절.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모전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사진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상금으로 연명하는 삶.
될 턱이 없었다.
기껏해야 상금 10만 원짜리 장려상이나 상금 없는 입선에 두세 번 된 게 끝이었다.
“이거 이래가지고 밥 먹고 살 수 있겠나?” 스스로 자문해보고,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다. 가장 주로 했던 것은 기업 행사사진을 찍는 것인데, 일주일에 한번만 하면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한 아주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행사사진은 일이 들쑥날쑥 했고, 한 기업의 행사를 전담으로 맡아서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일이 들어오는 대로 했어야 했기에 한 달에 한번, 많으면 두 번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제품사진도 찍었다. 보통 대기업이나 유명한 업체의 제품사진은 외제 중형 세단정도의 가격이 나가는 고가의 중형 카메라와, 소형 자동차 가격 정도 되는 조명 장비와 경차 정도 되는 모니터 장비를 갖춘 스튜디오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주로 한다. 하지만, 조금 영세한 곳. 예를 들어, 동내 식당이라던지, 이제 곧 시작하는 프렌차이즈의 홍보 포스터라던지, 광고 대행사의 AE(기획자)들이 대충 느낌 보려고 찍는 시안 작업이라던지, 집에서 간단하게 조명하나 놓고 촬영이 가능한 일들도 틈틈이 했다. 단, 이런 일들은 페이도 행사사진보다 적고, 그것도 분기별 한 번씩 생기는 수준이다.
결론은 뻔했다. 밥 먹고 살수 없었다. 날카로운 철학적 통찰과, 인문학적, 미학사적 지식을 한 것 버무려 찍어낸 사진이야말로, 예술로서의 사진이며, 그러기 위해서 배고픔과 외로움은 아주 훌륭한 자산이 될 거란 생각도, 허망하게 무너져내려가고 있었다.
결국 2년 만에 나는 9%의 사진작가 지망생에서 90%의 조금은 여유 있는 삶을 우선시하는 사진작가가 되기로 했다. 말이 좋아 90%의 사진작가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먹고 살만 하면 사진기 들고 뛰쳐나가겠다는 얄팍한 생각.
다행인 것은 행운처럼 다가온 사진대전 금상이 나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냥 선무당 같은 실력이었고, 몇 번이나 공모전 수상에 실패하면서 거의 처음부터 다시 사진을 공부했다. 더욱이 사진 관련일로 2년간 쌓인 내공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한 갤러리의 신진작가 공모전에 응모를 하고 돈부터 벌기로 했는데·······.
심사위원 : 박찬민
<세월의 오후>를 오늘의 포토로 선정합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뒤로하고 서서히 식어가는 오후에 뜨거웠던 자신들의 젊은 날을 저 편으로 떠나 보내고 회상하듯 세 분의 어르신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고, 나머지 두 분은 그것을 같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손이 향한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제목처럼 ‘세월’을 뒤돌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각자의 세월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한 자리에서 함께 뒤돌아 보는 지나간 세월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강줄기들은 여러 갈래로 흐르지만 마침내 바다에서 만나게 되듯 친구란 결국 언젠가는 한 방향을 함께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 인 것 같습니다.
여유롭게 흘러가는 강물과 세 분의 뒤 모습을 어루만지어 주려는 듯 부드럽게 드리워진 나뭇잎의 푸름이 잘 어우러져 사진의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주인공들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촬영 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보입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심심한 듯한 사진이었지만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기게 만드는 좋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