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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BADA Oct 24. 2021

'장비병과 실력의 상관관계 없음'에 대한 오랜 고찰

소설사진 ㅣ 어느 날, 카메라에 담은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필자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20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꽤나 유명한 연합광고써클에 현역 120여 명 중에 디지털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필자 하나였다. 물론 그 다음해에 디지털 카메라가 급격히 보급이 되어서 동아리 현역의 1/5이상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광고공모전에 참 많이 참여했는데,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서 작업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구입한 것이 디지털 카메라였지만, 적은 화소수와 미천한 사진실력으로는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약간의 장비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력이 없는 것은 온전히 카메라가 후져서고, 렌즈도 교환 할 수 없는 카메라 때문에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안 나온다고 필자는 궂게 믿었다. 그로인해 최신식 카메라를 찾아 꼼꼼히 스펙을 따지고, 해당기종으로 누가 찍어 놓은 걸출한 사진을 하루에 두세 시간을 보면서 지갑 사정에 눈물짓곤 했다.     


그리고 대충 또 다른 최신 기종 카메라가 나오면 이전에 노렸던 카메라를 중고로 구입해서 사진을 찍었고, 또 다시 나의 미천한 실력은 생각지도 않고 새로 나온 최신 카메라의 스펙을 열심히 외우고, 남이 찍어 놓은 사진을······.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의미 없는 일이다. 기껏해야 손톱만한 CCD(또는 CMOS) 달린 렌즈 일체형인 ‘똑딱이 디카’들끼리의 경쟁이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일반인 중에서 전문적으로 포토샵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문과 출신(?)이라 제대로 보정 된 사진을 만들 재주가 없는 필자는 언제나 칙칙한 사진을 찍어내면서, 쨍하고 화사하게 편집된 남의 사진을 보며 오직 카메라 탓만 하고 있었으니······. 

    

나의 장비병이 점점 과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일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보급형 DSLR이 출시되어서였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카메라 제조사에서 센서 크기가 1:1.6의 걸출한 크롭비를 가진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발표했다. 300D라는 카메라였는데, 여지없이 필자의 눈을 살짝 돌아가게끔 만들었다. 당시 친한 형이 대학교 영상과에 다니고 있어서 바로 그 제품을 구매했고, 필자는 ‘아. 이 카메라라면 하이엔드에서 방황하던 내가 정착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지갑을 보는데······. ㅠ      



결론은 그 다음 버전을 구매할 수 있었다. 다행히 휴학을 하고 작은 회사에 계약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갑 사정이 조금 나아진 필자는 그 다음 기종인 C사의 전설의 350D를 구입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녀석으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했다고 해야 맞다. 다행히 다니던 학교에 건축과가 있어서 아주 기초적인 것은 사진 실기 수업을 통해 배웠고, 그 이후에는 사진 관련 책을 다양하게 구입해서 독학을 했다. 여기서 필자가 독학이 가능했던 이유는 괜찮은 디지털 SLR카메라가 나왔기 때문이다. 만약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공부했다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고. 현상과 인화 등의 장비와 약품, 공간이 있는 학원에 등록을 했어야 했다.   

   

당연히 보급형 카메라의 특성상, 수많은 유저들이 생겨났고, 다양한 지식과 사용기를 경쟁적으로 공유했다. 필자는 그걸 그냥 줍줍하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실력은 빠르게 늘지 않았고, 남의 사진이 더 쨍해보이는 느낌에 이렌즈 저렌즈, 이 카메라 저 카메라를 기웃기웃 거리다가 보니, ‘나를 스쳐간 카메라가 똑딱이 포함 십여대요, 렌즈가 스물넷이더라.’     


그 사이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저 풀프레임 바디 하나랑 50mm 또는 괜찮은 표준줌렌즈 하나만 있어도 다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행사 사진으로도 밥벌어먹기 힘든 시기가 왔을 때, 난 90%의 사진작가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작은 회사에 취직도 했었고 이후 카페를 창업해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     


그 기간 중에 나는 5Dmk2 한 대 40D 한 대를 잃어버렸고, 50.8, 24-70L, 70-200L의 렌즈도 잃어버렸다. 대게는 지하철이나 지방의 버스에서 두고 내려서 다시 내 품에 돌아오지 못한 녀석들이다. 결국 어쩌다보니, 나를 사진의 길로 이끌었던 350D 한 대만 남았고, 40mm 팬케이크 렌즈 하나로 몇 년을 살았다. 가끔 더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었지만, 자영업자의 삶이 물질적이나 시간적으로 그렇게 여유 있지 않다보니, 예전처럼 무리해서 카메라를 구입하거나, 카메라 사양을 알아보기 위해 밤을 새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장비병은 세월이란 약에 강제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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