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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Sep 24. 2024

뛰어난 능력으로 자유-재산을 손에 쥔 기병군단 카자크

공산주의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약한 초원의 기병대




러시아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에는 화려한 군복을 입고 장검을 든 기병이 나오곤 한다.

 ‘카자크(자유로운 사람)’라 불리는 그들은 13세기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키예프 공국 등 동유럽의 여러 작은 나라가 망했을 때, 피난민들이 우크라이나의 초원으로 도망간 뒤 투르크계 원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만들어진 민족인 것 같다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왕 대신 투표로 뽑은 대장의 지휘하에 ‘귀족과 평민’ 같은 구분 없이 평등하게 살던 이들은, 폴란드와 러시아 같은 주변 강대국의 군대에 고용되어 이 나라들을 공격하던 오스만투르크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상대로 싸우면서 이름을 날렸다.

특히 17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흐멧 4세가 자신은 위대한 왕이니 복종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욕설을 가득 적은 답장을 보낸 사건은 유명하다(아래 이미지 참조).



물론 자신들을 고용한 왕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면 그들을 상대로도 전쟁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가 1667~1671년의 스텐카 라진의 반란과 1773∼1775년의 푸가초프의 반란이다.

둘 다 러시아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자유를 지키려고 싸웠던 이들의 모습은 황제와 귀족의 압제와 폭정에 시달리던 러시아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러시아와의 전쟁 중에 카자크 기병들의 실력에 감탄한 나폴레옹은 “카자크 기병이 우리 프랑스 군대에 들어온다면, 나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러시아 국토의 대부분을 이루는 시베리아는 카자크 기병들이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은 땅임을 생각하면 나폴레옹의 주장이 허풍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옹과의 전쟁 뒤에도 러시아가 겪은 거의 모든 전쟁에 참가했던 카자크 기병들은 1917년에 러시아에서 벌어진 공산주의 혁명에도 참가했다.

이 당시에는 카자크 기병들 중에도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덕에 부유해진 사람들과, 자유로운 삶을 택한 대신 가난하던 사람들로 나뉘었기 때문에 이들은 각각 백위군(황제의 군대)과 붉은군대(공산당 군대)로 나뉘어 싸웠다.

이렇게 시작된 카자크 기병끼리의 싸움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군에 협조한 카자크 기병과 소련(공산주의 러시아)을 위해 싸우는 카자크 기병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탱크와 전투기가 전쟁의 중심이 된 상황에서 이들이 할 일이라고는 적진 정찰과 도망치는 적 추격, 게릴라 소탕 정도가 전부였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독일의 패배로 끝난 뒤 소련은 카자크 기병대를 해산시켰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상과 자유를 지키려던 마음은 소설 [대장 불리바], [고요한 돈 강]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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