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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던 우크라이나인

단편 추리소설 <레닌그라드 1942년, 소시지>

by 장웅진





“다 자네들 덕분이야!”


시티코프 소령이 직접 나와 알렉세이의 잔에 보드카를 따라주며 치하했다.


“스탈린 동지께서도 매우 만족스러워하시네. 이에 따라 레닌그라드 방위군 내의 공범들을 잡기 위한 수사가 몇 시간 전에 비밀리에 개시됐지. 바실리의 아내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겠어.”


그 바실리라는 사람이 소령의 죽은 교수 친구라는 것을 굳이 확인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더 궁금했던 것도 있었으니까.


“저를 납치했던 놈들은… 아직도 추적 중입니까?”


“아, 그거라면…!”


시티코프 소령은 말도 못하고 한참 킬킬거렸다.


“어제 세 놈이 여군 중사를 납치하다가 체포됐네. 자기들만의 통로로 그 갈색머리의 자그마하고 예쁜 몸뚱이를 자루에 담아서 가지고 나가려다 체포된 거야. 그래서 자네를 불렀네. 자네가 직접 그놈들을 심문해 잔당들을 찾는 데 일조하게, 마카로프 중사.”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훌쩍이던 그 중사를 만났을 때, 나는 올가를 닮은 그녀의 모습에 하마터면 울컥할 뻔했다.

더욱이 그녀를 납치하려던 놈들 중 두 놈은 나를 납치해 우크라이나인에게 넘겼던 세 놈들 중에 있었다. 물론 내 손으로 직접 그놈들을 두들겨 패 세 번째 놈도 찾아냈다.

시티코프 소령은 그 네 명 모두를 직접 총살하도록 내게 명령했다.


크바슈나 노인은 인육 소시지임을 알고도 구입해 먹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먹을 것을 권했기에 총살당했다.

나머지 노인들도 감옥에서 생을 정리해야 했다.

아이들만은 시설이 괜찮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것이 내가 그 노인들에게 약속한 대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나중에 올가도 잘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나는 스탈린이 크렘린에서 직접 수여할 훈장과 중사 계급장을 받기 위해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사로 진급한 알렉세이가 짬을 내어 비행장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보디아노바 중사와 잘되어간다고 들었네. 축하하네.”


활주로에 서서 나와 함께 하늘을 쳐다보던 알렉세이의 얼굴이 벌개졌다.


“다 중사님 덕입니다.”


“내가 뭘…. 자네 덕에 그녀가 소시지가 되는 걸 면했다고 말해줬을 뿐인데….”


그리고 한참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알렉세이 쪽에서 먼저 말을 하려다가 말았고, 그래서 내가 더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멀리서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자그마한 새 같은 것이 하늘에 나타났다.

그 참새만한 것은 바람이 들어가 팽창하는 풍선처럼 점점 커졌다. 그러면서 엔진이 내는 소리도 더 커졌다.


“묻고 싶은 게 있네. 그냥 친구로서 묻는 것이네.”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거기에 제때 나타난 건 정말 기적이었네! 내 운이 엄청나게 좋았든가! 그래, 그렇다고 해두세! 그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 자네가 정말로 아주 잘 찍었다고 하세! 아니, 고기 삶는 솥을 달구던 수상한 연기가 굴뚝에서 솔솔 솟구치는 걸 자네가 운이 아주 좋아서 발견했다 치세! 일단 그날이 더럽게 추웠다는 건 논외로 하고 말일세! 헌데, 그 우크라이나인은 왜 죽였나? 수류탄까지 쓰면서 말일세! 정말로 올가가 생각나서? 그래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서?”


나는 베리야 대위에게 그 우크라이나인이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고 보고했던 알렉세이를 노려봤다.

나는 그자가 수류탄은커녕 총알 한 발 가진 걸 본 기억이 없어서였다.

알렉세이도 나를 마주 노려봤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 주행을 시작했다.

그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 또한 우리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금 말씀드리자면…, 아니, 그 전에 약속해주십쇼, 지금 하는 얘기를 올가 누님께 절대 말씀하지 않으시겠다고요. 이건 친구로서의 부탁입니다.”


“그렇다면 입을 다물고 있게.”


“아닙니다! 꼭 말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완전히 미칠 겁니다! 그렇다면 나탈리아, 아니, 보디아노바 중사에게도 안 좋은 일이 벌어지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약속해주었다.


“저도 한패였습니다.”


알렉세이는 아무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그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나는 파시스트 놈들의 대폭격 때 죽었죠. 사흘 만에 구한 빵덩이까지 팽개친 저는 반나절 간 혼자서 잔핼 뒤져 그녀를 찾아냈습니다. 끔찍하게도…, 온몸이 불탔더군요. 그때 그 냄새가 저를 미치게 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그녀의 팔이던 걸, 그 살점을 뱉어내고 있었어요. 며칠 뒤 그놈이 접근해왔죠. 저는….”


보드카에 취한 장군 두 명이 담소하며 낄낄대고 지나갈 때 이야기가 끊어졌다.


“하지만 저는 정보통이자 보급 담당이었을 뿐입니다. 사람을 납치하거나 죽인 적은…. 그래서 조만간 다 잡힐 걸 짐작했을 때…. 그래요.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그 우크라이나 놈을 잡지 않았겠습니까. 베리야 대위는 분명 그랬을 겁니다. 이 도시의 집 하나씩, 방 하나씩 뒤졌을 겁니다. 스탈린 동지께서 그놈을 잡는 걸 원하셨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저도 중사님도 지뢰밭에서 죽었겠지요. 등 뒤에 NKVD의 기관총을 둔 돌격대가 되든가요. 그래서….”


“알겠네. 아무튼 보디아노바 중사를 소중히 대해주게.”


“나탈리아가…,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 끔찍한 일을 겪지 않게 해줄 것을 올가 누님께 맹세하겠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올가도 가지고 있을 추억이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게 해주려고….

비행기에 들어갈 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알렉세이인가 해서 뒤돌아보니 피투성이 코트를 입은 그 우크라이나인이 서 있었다.

‘이건 환각이야!’라고 생각할 때 그가 외쳤다.


“자네도 곧 나를 이해할 걸세!”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던 순간 내 등 뒤에서 승무원의 독촉이 들렸다.


“문을 닫아야 합니다, 동지!”


“알았소.”


다시 고개를 돌리니 손을 흔드는 알렉세이만 보였다.

내 머리가 이상해졌나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렉세이에게 답례로 손을 흔들어주고서 비행기에 탔다.

승무원이 안내해준 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알렉세이 옆에서 그 우크라이나인이 씩―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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