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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23. 2024

작가의 말


2012년에 태학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면서 <직지 이야기>라는 책을 담당했었습니다. 청주 고인쇄 박물관에서 의뢰해 만들어진 책이었지요.


저는 이때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인 활자공들이 만든 쓰루가 활자’와 임오관(林五官) 선생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아울러 조선제 활자와 쓰루가 활자로 만들어진 성리학 책들이 도쿠가와 막부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조선 활자공 임오관>을 구상하면서 임오관 선생과 쓰루가 활자에 관한 자료를 더 수집하던 중 아주 결정적인 논문을 접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연구관이신 이재정 선생님의 <조선 활자 인쇄술이 일본 古活字本(고활자본) 인쇄에 미친 영향>이었지요.

이 논문 덕분에 작중 임오관 선생의 처남으로 등장하는 일본인 목수 ‘류’의 이야기의 기반인 ‘일본에 소개됐던 구텐베르크식 인쇄기’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요.     


<조선 활자공 임오관>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활자공의 이야기로 기획됐었지만, 도쿠가와 막부 치세의 일본에서 살았던 두 경계인(境界人)들, 그러니까 ‘어느 쪽에도 진심으로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임오관 선생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조선인이고, 류는 일본 땅에서 주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낼 수 없었던 기독교인이니까요.     


임오관 선생과 그의 동료들은 선조 임금에게 버림을 받았고, 류와 교우(敎友: 동료 신자)들은 서양인 사제들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임오관 선생은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는데도 포기하고 일본에 눌러앉았으며, 류는 대외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면서 애써 타락의 길을 갔습니다.

저는 류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엔도 슈사쿠 선생의 종교소설 <침묵>의 일본인 등장인물이자 ‘방황하는 배교자(背敎者)’인 ‘키치지로’를 참조했습니다.     


임오관 선생과 류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바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 반려자를 만났느냐?”였습니다.

임오관 선생은 후처(後妻)인 시노부의 간청을 받아들여 일본 백성들을 위해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류는 ‘에라이!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을 먹고 살았습니다. 자신이 보유한 달란트(Talent: 재능)를 내던진 것이죠.

 결국 임오관 선생은 일본의 대학자들과 지배자들에게서 존숭(尊崇)을 받았지만, 류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쯤에서 “남자 팔자도 아내를 잘 만나는 데 달렸다”는 어느 분의 푸념이 생각나네요.     


각설하고, 임오관 선생에 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자료는 위에 소개한 이재정 선생님의 논문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합니다. 심지어 임오관 선생이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회의적으로 보는 국내 의견도 보이더군요.

부디 임오관 선생이 일본에 끌려가기 전의 과거를 분명하게 드러내줄 사료(史料)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남강을 따라 흐르는 비애>는  <진주남강문단>에   기고했던  작품으로,  ‘전쟁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걸 목표로 했으며, 미국과 호주, 홍콩의 태평양 전쟁 영화 <바탄의 천사들>, <파라다이스 로드>,  <향항(홍콩)  탈환>  등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조선 활자공 임오관>의 주인공인 임오관 선생과 달리, 이렇다 할 기술이 없던 사람들이 일본에 끌려가서 당했을 일을 소재로 했습니다.     









<불국사의 십자가>도   <진주남강문단>에   기고했던  작품으로,   중학생 시절에 처음 접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집필했습니다.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십자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당나라 때 이미 서방의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장안(시안)의  서쪽에  조성된  시장에서   장사를 하러 왔으며, 현재 중국에는 ‘카이펑 유대인’이라는 유대계 중국인들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신라에  귀화한  처용의  고향이  아랍이라는  설도  있고요.

 

 신라 시대 석공들이 석굴암에 도입했던 여러 선진적인 시스템들이 실은 당시 서역에서 존재하던 기술이라는 점에도 착안했습니다.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서역인의 기술이 신라에도 전파되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논란이 많은  이   불국사의  십자가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종교  간의  반목과  불화를  부추기고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반목과  불화를  예수님과  부처님께서  참  좋아하시겠습니다?


부디  예림  부인과  안  선생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화목하게  살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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