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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23. 2024

수맥(水脈)을 이용하는 빙고(氷庫)

불국사의 십자가

          

“신라 땅은 서역과 달리 습기가 많아 굴 안 곳곳에 이슬이 맺혀 본존불상과 여러 석상들이 훼손당할 거라는 얘기도 덧붙였소. 불과 한두 세대 만에 석굴 내부에 이끼가 끼고 삭아서 망가질 거라면서요. 이 지상에 지어진 부처님의 나라가 자칫 백성들의 눈앞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거요!”    

 

저희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김대성 공의 말씀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김대성 공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지요.     


“헌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만, 부야 스님께서 당나라 서쪽에는 이에 대한 대책이, 바위로 된 방 안의 습기를 잡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선생의 집안이 그런 기술을 보유했다고 하셨고요.”


이번에는 부야 스님께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선생, 재상께서 말씀하시는 기술이란 땅 밑의 수맥(水脈)을 이용하여 빙고(氷庫)를 만들어 쓰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다.”


부야 스님의 말씀에 안 선생은 알겠다는 듯이 씩 웃으면서 놀라운 걸 알려줬지요.


“제 고향인 고창을 비롯한 서역 땅에는 사람이 판 지하수로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서역 땅은 건조하여 사막이 많지만, 이런 땅에서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건 다 이 ‘칸칭(坎井:  카나트)’이라는 지하수로 덕분이지요. 고산(高山)의 빙하가 녹은 물이 땅속에 스미면 암반 사이에 수맥이 만들어지는데, 석공들이 암반을 뚫어 그 물을 끌어내는 겁니다. 그런 기술이 있었기에 석굴도 만들 수 있었고요.”


안 선생의 말은 어쩐지 ‘서역의 석공들을 얕보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더군요.

헌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부야 스님께서 말씀하신 빙고도 칸칭을 이용한 겁니다. 고창의 부자들이 칸칭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나려고 고안했지요. 이는 칸칭 위에 바람이 잘 통하는 풍탑(風塔)을 지은 거지요. 풍탑이 잡아서 안으로 들여보낸 바람을 칸칭의 물로 식혀서 내보내는 과정에서 풍탑 안에는 늘 한기가 돕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얼음과 눈을 보관할 수 있기에 서민들도 재물만 있으면 냉수를 마시며 여름을 날 수 있지요.”


소승은 물론 표훈 스님도, 김대성 공께서도 믿지 못하시는 눈치였지요.

허나 부야 스님도 보셨다니 다들 납득할 수밖에요.

아울러 부야 스님께서는 석굴암 안에 습기가 차는 문제를 이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인 즉, 석굴암 바닥 아래에 물이 흐르게 하고, 벽을 이룬 석판 사이사이에는 가느다란 틈을 두어 바람이 통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풍탑에서처럼 석굴 안의 습기가 얼어 이슬이 되어 바닥에 고이는 거지요.

바닥을 깎아 기울여주거나 홈을 내면 이 물을 뺄 수 있고요.

그러면 석굴 안이 늘 말라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가장 큰 과제가 해결되었나보다 했습니다.

허나 웬걸요!

 김대성 공께서 과제 하나를 또 내시더군요.

 공께서는 찻잔을 다 비우시더니 뒤집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이를 집어 당신 머리 위로 올리시더니 부탁하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이렇게 자신의 찻잔을 들어 안을 들여다보시오. 아, 동자승, 너도 이걸 들여다 보거라!”


김대성 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뒤집힌 찻잔을 소승도 두 손으로 받아 들고서 들여다보니 그제야 ‘움푹 파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 개의 씨실들과 날실들이 구부러져 엮여 있는 게 보이는 것 같았지요.

다들 소승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생각하신 김대성 공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서역의 석굴도 천장을 둥글게 판다고 들었소. 표훈 스님의 말씀대로라면 이 또한 하늘을, 천계를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겠소! 그래서 이 몸은 석굴암의 천정도 이 찻잔 속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보오. 그래야 예림 부인이 소망하는 ‘부처님을 모신 지상의 천계’가 완성될 수 있지 않겠소!”


“석공들과는 이야기해보셨습니까?”


부야 스님의 물음에 김대성 공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침통해하셨습니다.


“동굴 안이라면 그렇게 깎아내는 건 가능하겠지만, 안에서 둥그렇게 쏙 들어간 듯이 보이는 천정을 갖춘 지붕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쳤소.”


그러면서 안 선생을 바라보시더군요.


안 선생은 두 눈을 내리깔고 한참 고심하더니 죄를 자백하듯 무겁게 입을 열더이다.


“재상께 이실직고하자면, 저도 저희 집안 어른들도 바위를 파내 칸칭이나 석굴을 만들긴 했어도, 바위나 벽돌을 조립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 집안 시조께서 대진국에 사실 때 그 나라의 수도에 만신전(판테온)이 있었고, 시조께서도 만신전을 보수하는 데 참여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  선생의  이  말씀  덕분에  세상이  넓다는  걸  깨우쳤지요.

안  선생은  차분히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혹시나 쓸 일이 있을지 모르고, 후손들이 가문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만신전을 보수하면서 알게 되신 기술을 집안 어른들이 대대로 전수해오셨는데, 그것이 쓸 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선생의 이 말에 김대성 공이 아이처럼 손뼉까지 치면서 기뻐하더이다.


다음 날부터 안 선생이 소승을 거느리고서 석공들과 함께했지요.

석공들은 이방인인 안 선생을 떨떠름해했습니다.

외모마저 이색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김대성 공과 부야 스님께서 지켜보시니 군말을 못하더군요.

그래서 일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안 선생도 정과 망치를 들기는 했지만, 대개는 석공들의 우두머리들과 설계도를 보면서 일의 방법을 논했지요.

소승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고요, 하하하!



칸칭(카나트)의  구조 https://en.m.wikipedia.org/wiki/Qanat


인공  지하수층  수로인 카나트를 활용한  페르시아의  건물 냉각  시스템 (천연 에어컨)

이미지  출처  겸  해설  -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Airflow-in-a-Qanat-cooling-system_fig4_334947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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