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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23. 2024

예림 부인

불국사의 십자가

          

그 순간 안 선생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역력했습니다.

높으신 분들은 “저 산이 마음에 들지 않군!” 같은 말씀을 쉽게 하시지만,

흙과 돌을 파내가며 그 산을 치워야 하는 백성들은 죽어나가는 법이 아닙니까.


물론 김대성 공께서도 이를 아시던 모양인지, 안 선생의 마음을 움직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대사님들께는 미리 말씀드린 걸 선생께도 말씀드리자면, 이 몸은 석굴암을 짓는 일에 이 몸의 재산을 모두 털어 넣다시피 하고 있소. 웬 줄 아시오?”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있으셔서라고 방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실은 다른 이유도 있다오.”


안 선생의 표정은 ‘뭐, 그럴지도’ 정도였습니다.

 당나라에 있을 때에도 석굴을 만드는 데 후원한 부호들 또한 겉으로는 나라와 백성들의 안녕을 빈다고 하면서도, 본심은 부처님께 잘 보여 재물을 쌓고 권세를 모으는 과정에서 지은 죄를 용서받고서 극락왕생을 하려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헌데 김대성 공의 말씀은 뜻밖이었습니다.


“이 몸에게는 상당히 아름다운 처조카가 있소. 처조카는 올해 스물다섯 살 되었소. 그런데 6년여 전에 부군을 잃었소. 그 아이의 부군은 우리 신라를 위협하던 백제의 폭군 부여의자(의자왕)와 그의 자식들을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멸망시키고, 진흥대왕 때부터 신라의 강역이던 한수(한강) 일대마저 위협하던 고구려 또한 멸망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신 흥무대왕 김유신 공의 자손이오.”


그 말씀에 소승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만,

안 선생은 우리의 과거사를 모르니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김대성 공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허나 흥무대왕께서 돌아가시고 삼국 또한 하나가 되자 흥무대왕의 가문인 신김씨(新金氏) 일족을 미워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소. 아니, 그 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토사구팽이라도 하듯이 대놓고 신김씨를 박해하는 자들이 나타난 거요."


이쯤부터는  안  선생도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시고서  김대성  공의  말씀을  경청하시더군요.


"기실 신김씨는 일찌감치 우리 신라의 대왕께 귀부한 금관국 왕족의 자손들인지라  굴러들어온 돌 취급을 받았다오. 그래서 자손들은 조상님의 덕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졌소. 결국 내 처조카 예림 부인의 부군은 분을 못 이겨 결심을 했소.”


그쯤에서 표훈 스님과 부야 스님이 침통해하시더군요.

예림 부인의 부군을 두 분도 잘 아셨던 게지요.

 김대성 공도 당연히  크게 침통해하시면서 말씀하셨고요.


“당나라에 유학하여 황제를 곁에서 모실 정도로 크게 출세하면, 이 신라 땅에서 자신에게 비아냥대거나 감히 자신의 가문을 조롱할 자가 더이상 없으리라 했소. 그러니 3년 내에 크게 출세한 다음 예림 부인 또한 부르겠다며 당나라로 떠났소이다만…, 결국 바다에서 태풍에 휘말렸소.”


이쯤에서 안 선생도 아랫입술을 깨물고 방바닥을 쳐다보더군요.


“예림 부인은 서해의 섬에 떠밀려온 덕에 살아난 선원에게서 이 비보를 전해 듣고 실성을 했다오. 부군이 추워한다며 옷과 이불을 강물에 던지는가 하면, 심지어… 부군을 살려내라며 집에 모신 불상에 도끼를 휘두르려고까지 했소.”


그렇습니다, 공자.

어린아이였던 소승도 김대성 공의 그 말씀에 경악을 했지요.

그러면서 자기가 모시는 신과 대화하기 위한 대화수단을 바다에 던졌다던 안 선생의 일이 생각나더군요.

김대성 공은 더욱 침통하게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급보를 듣고 이 몸은 대궐에서 나는 듯이 달려와 예림 부인을 크게 꾸짖었다오. 하지만 완전히 실성한 예림 부인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잖소. 이 몸의 노여움이 슬픔으로 바뀌면서 몸져누웠더니 여기 표훈 스님께서 이 몸을 방문해주셨소.”


이쯤에서 표훈 스님이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소승은 여러 날 뒤 재상께서 함께하신 자리에 예림 부인을 모시고 대화해보았습니다. 다행히 소승을 보자 마음을 잡으신 예림 부인께서는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 연좌(蓮座) 주변을 동무들과 함께 돈다면 부군께서 극락왕생하실 수 있을 거라는 계시를 지난밤 꿈에서 받으셨다고 하셨지요.”


이쯤에서 표훈 스님이 말씀을 끊으시고서 김대성 공을 보셨고, 김대성 공은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표훈 스님은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예림 부인의 꿈에 나타나신 스님은 완벽한 원을 그리며 돌아야 한다고 했더랍니다. 소승은 이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실 원이란, 특히 모난 곳 없는 바퀴처럼 완벽하게 둥근 원이란 곧 안정적인 세상, 바로 부처님께서 계신 천계(天界)를 의미하지요."


안  선생은   고개를  갸웃하시긴  했지만

이어지는  표훈  스님의  말씀을  잠자코  경청하시더군요.

하긴  불자가  아니니  말이지요.


"그래요!  소승은   스님의  말씀이  예림 부인과 동무들은 천계에서 부처님 주변을 도는 선녀들과 같은 역할을 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부군을 성불시켜드리려는 예림 부인의 진심어린 소망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어서  김대성  공이   표훈  스님의  말씀을  보완하듯이  말씀하셨습니다.


“표훈 스님의 말씀대로라오. 부군을 잃고 슬픔에 빠져 반쯤 혼이 나간 예림 부인에게 이 몸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소. 그래서 표훈 스님과 논의하여 바로 이 석굴암을 제작하기로 했지요. 석굴들을 파서 부처님의 나라를 이루었다는 서역에서처럼 말이오. 허나 석공 우두머리들이 이르기를, 마치 목재로 배를 만들 듯이 바위를 깎고 조립하여 완벽하게 둥근 방을 가진 석굴을 만들기는 다들 불가능하다고 하는 거요. 어찌 단 한 명도 해보겠다는 말조차 안 하는지….”


김대성 공께서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탄식하듯 말씀하셨지요.



석굴암의  단면도  http://world.kbs.co.kr/special/unesco/contents/excellent/e1.htm?l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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