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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23. 2024

바위굴을 깎아 만드는 암자

불국사의 십자가

         



네 분의 잔에 차를 따라드린 저는 구석에 얌전히 앉아서 귀를 쫑긋했지요.


“이 몸의 아버님께서 이 몸 전생의 어머니라면서 한집에서 살게 해주신 여인 경조 부인은, 실은 이 몸의 생모시라오. 아버님께서 이 몸을 서민의 몸에서 취하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몸의 장래와 가문에 좋을 게 없다고 여기신 큰마님께서 이 몸을 직접 낳으신 척 하시려고 지혜를 내신 거요. 각설하고, 이 불국사를 이 몸이 이렇듯 크고 화려하게 다시 짓는 이유는 폐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라오.”


눈치를 보니 표훈 스님은 잘 아시는 듯했고, 부야 스님도 대강 짐작하신 듯했습니다.

안 선생도 ‘그럼 그렇지’ 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군요.


안 선생의 집안이 대대로 석굴 제작 의뢰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당나라 서쪽 지역 토호며 유지 등이 백성들에게 떠받들림을 받고 싶어서였다고 했지요.

 자신이 부처님의 일등제자인 양 하면서요.

 당연히 그에 들이는 재물 또한 어마무시해서 안 선생 집안도 그 재물을 쥐려고 다른 신을 섬기면서도 부처님 모실 집을 그토록 열심히 만들어왔다지 뭡니까, 하하하!


뭐, 그런 현실을 자각하고 괴로워한 안 선생 집안의 어느 어르신은 이렇게 비꼬셨다더군요.


‘우리에게는 재물이 곧 참된 신이다!’라고요.


그러한 집안 내력 덕분인지 안 선생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별 불만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임했지요.


험험! 각설하고요.

김대성 공의 말씀은 이어졌습니다.


“이 몸의 집안은 대대로 왕실과 가깝다오. 그래서 아버님에 이어 이 몸 또한 재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소. 그래서 이 몸은 왕실과 폐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소처럼 해왔소! 지금 제작 중인 불국사의 새 암자인 석굴암에 모실 본존불상을 폐하를 본떠서 만드는 이유도, 폐하께서 곧 이 신라 땅에 강림하신 부처님이심을 온 나라에, 이 나라 만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오. 앞으로 신라의 백성들은 석굴암의 본존불상 주변을 돌며 기원을 하면서 폐하께서 곧 부처님이심을 마음속에 새길 것이오!”


폐주 궁예가 떠오릅니다.

궁예도 자신이 미륵부처님의 화신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말이지요.

아니, 자신이 정말 미륵부처님인 줄 알더라고요.

왕년에는 훌륭한 장군이라는 평을 듣던 사람이 도대체 어쩌다 그리 망가진 건지….


소승이 생각하건대, 아마 주변에 모인 간사한 자들이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해대던 아부를 너무 많이 들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궁예는 높으신 분들이 경계로 삼아야 할 사례지요.

물론 궁예가 하는 짓이 악귀나 야차와 같았기에 백성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러니 폐하더러 궁예를 멸하여주십사 간청한 것이지요, 하하하!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서 누구도 감히 김대성 공의 말씀에 그런 식으로 토를 달수는 없었지요.

 자칫 당시 신라의 군주셨던 경덕대왕을 모욕하는 말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궁예의 쇠방망이 같은 거에 맞아 죽지는 않더라도 역적으로 몰려 패가망신을 당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김대성 공의 말씀이 계속되는 내내 다들 입을 다물고 계셨답니다.

 다행히 김대성 공의 말씀도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고요.


“헌데 말이오, 본존불상의 제작은 순조롭게 되고 있소. 허나 본존불상을 모실 암자의 건축이 지지부진하다 못해, 설계조차 나오지 못하여 안 선생을 모신 거라오.”


이에 안 선생은 황송하다는 듯이 “예, 그렇군요” 하더니만

김대성 공께서 더 말이 없으시자 조심스럽게 입을 떼더군요.


“재상께서는 혹시 구상하고 계신 암자의 모습이 따로 있으신지요? 목재로 지을 거라면 굳이 당나라 서쪽 끝에서 살던 소인을 부르시지도 않으셨을 듯해서요.”


“그렇소, 선생. 선생의 집안은 당나라 서쪽에서 바위굴을 깎아 암자를 만드는 일을 대대로 해오셨다고 여기 계신 부야 스님에게서 들었소."


모두의  눈이  부야  스님께로  향하니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이시며  고개를  끄덕여주셨습니다.

김대성  공의  말씀이  이어졌죠.


"돌로 본존불상과 같은 석상을 만드는 기술이야 우리 신라의 석공들도 상당히 뛰어나오. 허나 그들마저도 돌로 암자를 짓는 건 다른 문제라면서 고개를 돌리고 손사래를 치더군요. 하긴 이 몸도 당나라의 서쪽이나 천축의 것과 같은, 바위를 파서 만든 암자를 여러 석공들이 이 땅에서 시도했음에도 그 결과물들이 영 신통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


김대성 공이 가리킨 신라의 석굴들이란 석굴암보다 먼저 이 경주에 만들어진 골굴사라든가 군위현의 삼존석굴 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역에 다녀왔다는 이들은 이런 곳들을 손가락질하면서 ‘상당히 조잡하다’고까지 폄훼하는데, 김대성 공의 생각도 그러했던 모양입니다, 하하하!


하긴 소승이 석공들에게 물어보니, ‘신라의 바위에 비하면 서역의 바위는 떡’이라고 하더군요.

안 선생도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소승과 함께 채석장을 여러 번 돌아다니며 돌들을 일일이 살폈으니까요.

그래서 김대성 공께 주저 없이 말했겠지요.


“말씀을 끊어 죄송합니다만, 재상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어보시오,  선생.”


“본존불상을 지붕 같은 걸로 덮을 바위벽 암자를 짓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소. 바위를 깎고 조립해 동굴 같은 집을 만들 것이오."


안  선생을  제외한  모두가  기겁했습니다.

하지만  김대성  공은  별거  아니잖느냐는  투로  말씀을  계속하셨지요.


"석상도 만들고 탑도 만드는데, 고작 두꺼운 석판을 못 만들겠소? 비용과 시간을 더 들인다면 그 석판의 한 면에 보살상과 나한상 등도 새길 수 있을 것이오. 그 석판들을 조립해 만든 집의 벽과 지붕에 돌과 흙을 쌓아서 진짜 동굴인 양 할 것이고요."


이쯤부터  김대성  공은  환상에  취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 이 암자를 찾는 백성들이 알현실인 전실(前室)에 들어서자마자 부처님이 모셔진 주실(主室)을 보면서 마치 부처님의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신비로워할 것이고, 이 일대의 지리를 모르는 외적들은 거기에 암자가 있다는 것조차 꿈에도 모를 것이외다. 그러면 신성한 암자가 범해질 걱정도 없을 것이오."


여기까지  말씀하신  김대성  공께서  저희를  휘  둘러보시더니  쐐기를  박듯이  일갈하셨어요.


"그래요! 서역의 것과 같은 석굴을 팔 적절한 바위산도 기술도 없다면 숫제 바위를 엮어 석굴을 만들면 되는 게 아니겠소!”



로마인들이  만든  판테온  https://artincontext.org/pantheon-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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