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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활자공 임오관
25화
열 십(十) 자 모양의 돌덩어리
불국사의 십자가
by
장웅진
Aug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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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매에게 술로 반죽한 떡을 먹여 잠을 재운 뒤, 도망을 치듯 강가 나루터로 달려가 부야 스님이 수배해두신 배를 탔더랍니다.
배가 바닷가에 갈 때까지 안 선생은 눈물을 여러 말이나 흘렸다지요.
배가 신라로 오는 동안 몇 번이나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것을 부야 스님과 선원들이 잡았다고 합니다.
숫제 돛을 고정하는 데 쓰는 밧줄로 묶어두기까지 했다지요.
부야 스님이 직접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이셨고요.
기실 그마저도 먹지 않으려던 것을 결국 배가 고프니까 입을 열었다지요.
다행히 경주에 도착했을 때는 안 선생도 많이 진정되었다지요.
소승이 직접 봤을 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지요.
김대성 공께서는 안 선생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오셨지요.
허나 안 선생의 상태가 영 좋지 않자 털썩 주저앉으셨지요.
이에 부야 스님께서 안 선생을 잘 돌봐서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놓겠다고 약조하셨지요.
그러던 차에 일이 생겼습니다.
소승도 부야 스님을 마중하려고 항구에 나갔던 이들 중에 있었거든요.
안 선생은 동자승이던 소승을 보더니 두 눈을 손바닥만큼 크게 뜨고 자신의 친아들과 재회라도 한 것처럼 소승을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서럽게 울면서 저더러 뭐라고 말하는데, 안 선생의 아들 이름을 부르는 거라고 부야 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에 김대성 공께서 크게 웃으시며 소승더러 안 선생을 수발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덕분인지 안 선생은 아주 빨리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소승과 함께 돌아다니며 신라의 말과 풍습도 석 달 만에 익혔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안 선생이 김대성 공에게 채석장을 알려 달라 하더군요.
김대성 공도, 부야 스님도 돌을 파악하려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헌데 안 선생은 채석장 여기저기를 한참 뒤지더니 당시 소승의 머리통만한 둘레의 납작한 돌을 주웠지요.
“나리, 그걸로 뭘 하시려는 겁니까?”
소승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으니, 안 선생이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하더군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주인님과 대화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 것이니라. 그분은 내 집안 시조의 어머님 때부터 내 집안의 사람들 모두가 대대로 섬겨온 분이시니라.”
안 선생은 그 돌을 정과 망치와 끌로 쉬지 않고 다듬었습니다.
소승은 그걸 곁에서 구경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안 선생이 열 십(十) 자 모양의 돌덩어리를 벽에 기댄 소반에 얌전하게 놓고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고서 뭐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는데,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요.
‘당나라 석공들은 일하기 전에 이렇게 치성을 드리는 모양이다.’
뭐, 방안은 돌가루랑 파편으로 어질러져서 소승은 빗자루와 쓰레받기와 걸레 등속을 가져와 쓸고 닦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안 선생은 일말의 미동조차 없이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서 치성을 올리더군요. 십 자 모양의 돌을 향해서 말이지요.
‘아하! 저 돌이 그 ‘하늘에 계시다는 주인님’이랑 대화하는 수단이구나!’
짐작하셨겠지만 소승은 고아였습니다.
걷기 시작하던 때에, 그러니까 큰 기근이 든 해에 불국사 입구에 버려진 걸 스님들이 거두어주셨지요.
그래서 아직 어렸던 그 당시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두었습니다.
특히 사악한 자들은 대개 자신이 하는 짓을 사악하다 여기지 않기에 자기를 도와달라며 부처님께 빌러 오거든요, 하하하!
그래서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속임수가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람이 깎아 만든 돌덩어리가 ‘천신(天神)과의 대화수단’이라니까 믿지를 않았지요.
안 선생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어느 사기꾼에게 속아서 저러는 모양이다 싶었습니다.
뭐, 당나라에 있을 때 재물깨나 날리고 빚도 졌겠구나 싶었고, 그래서 이렇게 신라로 도망을 온 게 아니겠나 싶었지요.
소승이 이런 제 생각을 말하니 안 선생이 크게 웃더군요.
그러더니 소승에게 아주 조용히, 혹시 주변에 다른 이가 없나 살피더니 이렇게 묻더이다.
“그럼 금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어 치성까지 드리는 건 어찌 생각하느냐?”
소승이 보기에도 큰스님들이라든가 김대성 공의 귀에 들어가면 사달이 날 듯 했습니다.
그래서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청소도구를 챙겨 나왔지요.
안 선생이 아침상을 물리고 산책을 할 때 소승은 물었습니다.
“헌데 왜 신라에 오실 때는 저 ‘천신과의 대화수단’을 안 갖고 오셨습니까?”
‘바다에 빠졌다’는 대답 정도나 나오겠거니 했습니다. 뜻밖의 말을 하더군요.
“버렸었느니라.”
소승이 기가 막혀 묵묵히 바라보니 안 선생이 서쪽을 멍하니 보면서 말하더군요.
“자식들과 헤어지고 나니 너무나… 원망스러웠거든….”
문득 불국사 입구에 저를 버렸던 소승의 부모도 안 선생과 같은 사정이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이렇듯 안 선생이 나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김대성 공께서 밤에 조용히 찾아오셨습니다.
저랑 안 선생, 부야 스님과 김대성 공 그리고 신이한 능력을 가지셨다던 고승 표훈 스님만이 자리를 함께했지요.
기실 표훈 스님이 김대성 공께 안 선생을 섭외해드리도록 부야 스님께 연락을 하신 분이거든요.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몸이 석굴암을 짓는 이유가 이 몸의 전생에 부모님이셨던 분들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있소. 허나, 이는 반 정도만 맞소.”
경주에서 발견됐다는 고대 돌십자가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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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물엿과 주전자> <보레누스의 증언> <마의 백광현> 작가 장웅진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2024년 아르코 창작기금에 <조선 활자공 임오관>이 당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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