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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Dec 09. 2023

운수 좋은 날

되는 일 하나 없던 하루 끝에 만난 행운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7시 10분에 일어나 예정대로 35분에 나가는 줄 알았으나, 이놈의 폰이 안 보인다. 가까스로 빨래 더미에 묻혀버린 핸드폰을 꺼내고 시계를 보니 7시 40분. 으악, 지각이다! 항상 시간 딱 맞춰 나가는 나쁜 습관의 결과물이다. 오늘이 하필이면 ‘그날’이라 몸도 기운도 축축 처진다.


 가까스로 도착하여 숨을 고르고, 가방을 열었는데 안이 축축하다. 물이 새서 가방 안의 내용물이 다 젖은 것이다. 하필이면 그 가방 안에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책 두 권이 들어있네..? 정말 아침부터 되는 일이 없다. 불행 중 다행히도 끝부분만 살짝 젖은 것 같아 일단 말리고 매일 아침마다 찾아가는 곳을 찾아간다. 힘든 학교 생활 속에서 나를 늘 반겨주는 안식처. 이곳 어딘가에 나를 늘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웬걸, 오늘은 불이 꺼져있다. 내 마음속 공간 한 구석을 환하게 비춰주던 작은 전구 하나가 탁, 하고 꺼진 기분이다. 허전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각자에게 주어진 일,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바쁠 텐데. 귀를 닫아보려 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들을 가볍게 툭툭 던진다. 그중에는 나에게 소중한 이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당사자에게는 심각하고 속상한 일인데, 저들은 뭐가 웃겨서 저리 웃는 걸까. 그 와중에 비겁하고 용기 없는 나는 그들에게 따지지 않았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너희 멋대로 부풀리냐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가볍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냐고.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마디였다. 헛소문을 정정하는 한 마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정말 화나고 속상했지만, 비겁한 나는 결국 한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오전에 펼쳐놓았던 책 두 권이 아직 안 말라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그냥 주말 동안 계속 말리기로 했다. 하필 오늘 짐이 많아서, 핸드폰을 학교에 두고 오고 말았다. 핑계인가. 그냥 내가 덜렁거리는 탓이지. 지하철역 개찰구도 통과했건만, 결국 다시 학교로 올라가기 위해 바쁜 친구를 배웅하고 개찰구를 나가는 중이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멀지 않은 곳에서 꺄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반가운 얼굴 셋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오늘 청소하느라 늦게 갈 거라고 먼저 가라고 했던 친구들.


- 헐 너 뭐야? 우리 같이 뭐 먹고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

-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핸드폰을 두고 와서 다시 올라가는 중..

- 에이 기다릴게 나와서 전화 줘~


 속상했던 하루 끝에 만난 따뜻함에 마음속 어딘가 뭉쳐있던 곳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다. 참으로 운수 나쁜 날, 내가 핸드폰을 두고 와서 너희를 만날 수 있었네. 맛난 걸 먹으러 가는 길에 네가 나에게 한 말이 귓속을 자꾸만 맴돌아. 네가 내 친구여서 정말 행복하다고. 용기 없고 소심한 나인데도 늘 따뜻한 말만 해주는 네가 내 친구여서 나도 참으로 행복해. 운수가 나쁜 날이 아니라 좋은 날이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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