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젊은 날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 나 자신의 영달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남들처럼 그 길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나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런 고민을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머문 곳은 나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였기에 고민이 깊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을까. 성장과정에서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 그리고 학교 스승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할 특별한 이유를 느낄 수 없었는데, 어쨌든 그때는 개인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것에 관심이 더 컸다.
∥1985.10.02.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했던가. 사회과학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먹고사는 일에만 급급해야 하는지.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서 남을 억누르고 일어서야 하는지.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정신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올바른 삶이라 생각한다.
∥1986.04.24. 남들처럼 호사스러운 삶이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떨어지고 할머니 손에서 애달프게 자랐다. 중학교 졸업 후에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다가 공장생활을 했다. 혼자 힘으로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서 대학생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1986.08.13. 그저 남들처럼 함께 흘러가며 행동하고 웃고 고민하는 것이 삶인 줄 알았더니 조금씩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면서 내 삶의 가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내가 살아야 하는지. 수많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며 ‘어떻게 내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대학생활이다.
어느덧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나고 보니 내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시대적인 환경 때문인 듯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로부터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우리 동네도 새마을 운동 노래가 새벽부터 울려 퍼졌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를 들으며, 사람들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고 외쳤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냈다.
대학생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 나라 전체가 온통 들끓고 있었다.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을 외치는, 대학생 및 민주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7~8년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영향을 끼치고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일까? 내 삶의 여정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내 나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 나라가 잘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나 개인보다는 ‘조국과 민족’의 발전이었고, 전문가로서 경영컨설팅 활동을 하면서도 내 생각이 머문 곳은 ‘중소기업과 한국경제’의 성장에 기여하는 삶이었다.
당시에는 생각이 흐르는 대로 느낄 뿐이었고, 이것이 내 삶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었다. 이제 와서 깊이 생각해 보니, ‘조국과 민족’이나 ‘중소기업과 한국경제’는 모두 나에게는 결국 같은 관점이었다. 굳이 가치관으로 설명하자면, ‘애국심’이나 ‘사회적 공헌’에 내 삶의 가치를 두고 살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러한 가치관을 갖고 인생을 살면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꾸고 싶었던 게다. 우리나라가 잘 사는 선진국으로 발전하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더욱 아름답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다. 여기에 미약하나마 공헌하는 내 인생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나 개인의 삶을 전부 도외시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잘 사는 선진국으로 발전하는데 공헌하는 삶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의미다. 그러니 내 삶에 가치와 의미는 이러한 가치관 관점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이제야 대답을 할 것 같다. 젊은 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지난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회상이고, 그러한 가치관이 나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어느덧 여기에 이르고 보니, 젊은 날의 고민은 한낱 망상이 아니라 나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나침반이었다는 생각이다.
그 방향에 따라 개인적으로 탐욕을 부리지 않으며 건실하게 살았고, 남들처럼 많은 부를 이루고 싶으면서도 돈의 노예로 살지 않았다.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고, 허세를 떨며 거창하게 치장하지도 않았고 위선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소박한 꿈을 꾸고 작은 것들에 만족하는 소탈한 삶이었다.
그래서일까? 올곧은 선비처럼 그 누구 앞에서도 기죽을 일이 없었고, 양심을 속이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온 것 같아서 나 스스로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람도 유명하게 이름을 떨친 사람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나 웃음을 주고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축적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 기부를 하거나 재단을 설립한 것도 아니었다.
인생길 여정에서 사회적으로 이런저런 소소한 활동들을 하면서 살아왔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삶의 조각들도 있었지만, 남들에게 보여줄 만큼 이룩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살아온 인생이라 생각하니 왠지 인생무상 허전함이 밀려온다. 너무 소소하고 겸손하게 말한 것일까. 지난날에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었던 내 삶은 어찌 된 것인가.
그동안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허겁지겁 살아왔나? 아니면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부질없는 인생,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일까. 이게 아니었는데...... 지난날들을 곰곰이 되돌아본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행동이 있을까. 사람의 행동은 어떤 일이든 가치가 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이웃 그리고 사회와 나라에 가치 없는 행동은 없다.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에 반하는 반사회적인 행동만 아니라면, 어느 누구의 그 어떤 일이든 충분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다. 비록 자신은 모를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찾아본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여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름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내 삶의 조각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다시금 돌이켜보니 대학생시절에는 민주화를 외쳤고 결국에는 6.29 민주화 선언까지 들었다. 30대에는 직장인으로서 대기업 및 중소기업에 근무를 했고, 그 후에는 경영컨설턴트로서 20여 년간 수백 개의 중소기업에 대한 경영컨설팅 활동을 했다.
경영컨설팅은 주로 정부 산하 기관 및 지자체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중소기업들에게 마케팅 및 경영 전략 제시, 청년창업가들에게 종합적인 경영 코칭, 수출 중소기업 및 지원 기업에 대한 심사평가, ○○○ 쌀 첫 TV-CF 프레젠테이션 자문 등 여러 기업 및 기관들의 문제해결과 성장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중소기업 종합진단 방법”에 대한 개념을 발표했고, 이것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실행되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나아가 한국경제의 성장을 위한 글로벌 마케팅 인프라(GMI) 구축을 연구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여러 관계자들에 대한 설득과 협력이 필요한 일인지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견을 피력했고 몇몇 관련 기관에는 제안을 했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이를 나의 저서에 적어 출판을 했었다.
이러한 활동들 속에는 개인의 경제적·사회적인 활동들이 뒤섞여 있다. 때문에 칼로 두부를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항상 사회적인 활동에 관심이 있었기에, 내 삶의 방식이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았고 나름 균형을 잡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도종환 시인의 “산맥과 파도” 중에 일부 구절이다. 아직도 이 시처럼 세상을 살고 싶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바꾸며 살고 싶기에 몸과 마음이 꿈틀거린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살면서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헌을 했는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선뜻 답변하기가 궁색해지고 대답을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철학적 사상이나 세상의 돈·명예·권력에 대단한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거나 사랑을 받은 게 미미하고, 아직도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호구지책으로 살아온 평범한 삶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모자랐던 것일까. 이루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탁월한 전략을 세우지 못해서였을까. 개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활동에 얽매여서 사회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였을까. 아니면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열정이나 간절함이 부족해서였을까.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 보면,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의욕만 가지고 감성적으로 매달리며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실패한 인생일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지난날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던 일들은, 선택의 무게를 견디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름 용기를 내서 결정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야 뭐라고 말하던 사회적으로 아주 희미한 발자국이라도 남기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좁쌀만 한 가치라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앞으로라도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빛을 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 삶에 가치를 찾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며 자신을 위로하고 존중하고 싶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까. 그들도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기에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여기에 이르러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수용하고 사랑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여기서 희망을 잃고 포기한다면,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버릴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도 연기처럼 희미하게 사라지고 말 것이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핑계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게 비록 미미할지라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존중하는 게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중소기업의 성장전략을 수립하고, 기관에서 심사 평가를 하고, 글로벌 마케팅 인프라(GMI) 구축을 연구하고, 국내외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청년들의 진로와 직업을 상담하고,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무대 위에서 이런 삶을 펼치고 있다.
오늘도 꿈과 희망을 품고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가던 발길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다시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잠시 멈춰 상념에 잠겨도
내일을 향해 다시 돌아서서
마음에 불꽃을 피우리라.
뚜벅뚜벅 걷는 발길 위에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서
아름다운 향기를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