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린이 아내의 성장기
작은 꿈이 하나 있었다.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테니스를 즐기는 꿈이었다. 아내는 결혼 후 1달 ~ 2달 정도 레슨을 받다가, 아이들을 키우느라 그만두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테니스를 좀 친다는 사람들 치고 부부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아내와 테니스 가방을 메고 테니스장에 가고 싶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아내와 다정하게 테니스를 즐기고 싶었다. 테니스가 끝나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과 행복도 아내와 함께 누리고 싶었지만, 그저 이루지 못할 꿈만 같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내가 “테니스를 배우겠다.”라고 선언했다. 몹시 반가웠지만 과연 얼마나 갈까.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다. 우선 코치에게 레슨을 받도록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했다.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울 의지가 분명해 보여서 적극 도와주었다.
나는 어느 클럽에 가든 실력이 중수는 되었기에 초보 아내를 가르칠 실력은 되었다. 아내의 테니스 폼을 잡아주고 박스 볼을 던져주고 난타를 받아 주면서 몇 년 동안 코치를 했다. 한 여름에는 비를 맞으면서도, 한 겨울에는 강추위에도 끈기 있게 연습을 계속했다.
스트로크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동시에 가르쳤다. 동호인들 중에는 백핸드에 약한 분들이 의외로 많기에 아내에게는 처음부터 양쪽을 모두 몸에 익히도록 했다. 포핸드를 가르치고 나서는 백핸드도 포핸드와 똑같은 자세로 익히도록 했다. 하지만 백핸드는 팔에 힘이 약하다고 해서 투핸드로 라켓을 잡도록 가르쳤다.
발리는 아무리 가르쳐도 제멋대로 쳤다. 벌써 10년이 가까워 오는데 연습할 때뿐이고,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발리가 아니라 반사적으로 스트로크 발리를 친다. 그러니 네트에 걸리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기가 일쑤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에이~”라고 혼자서 푸념을 하고, 똑같은 실수의 계속된 반복인데도 고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스매시는 그런대로 잘 익혔다. 초보자가 그 정도면 꽤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급하게만 치지 않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상대방 로브에 후진하며 스매시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대체로 준비동작이 늦고 발이 무거워서 그런 듯하다.
서브는 기본형을 가르쳤는데도 너무 어려워했다. 서브는 혼자서 많은 연습을 해야 하기에 내가 없어도 테니스장에서 연습을 하곤 했다. 테니스장에는 선생님들이 너무 많았다. 어떤 사람이 아내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 어려운 서브는 배우지 말라면서 쉬운 서브 방법을 가르쳐준 모양이다. 그 후에 아내에겐 쉽고, 상대에겐 약한 서브로 굳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서브 후 서비스 라인까지 들어가는 것을 가르쳤다. 체중이 앞으로 나가면서 서브를 넣으면 서비스 라인까지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지만 두려워서 앞으로 쉽게 나가지 못했다. 상대방의 리턴 볼 상황에 따라서 앞으로 들어가도록 여러 차례 연습시킨 결과, 이제는 그런대로 두려움 없이 앞으로 들어가는 실력이 되었다.
기본동작들이 어느 정도 익혀질 무렵부터 아내는 게임을 시작했다. 복식게임은 4명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내보다 조금 상수인 여성분들이 게임을 잘 해 주어서 고마웠다. 하지만 아내가 워낙 초보라서 그들은 함께 게임하기를 서서히 피했지만, 클럽에서는 내가 같이 게임을 했으므로 그런대로 자주 게임을 할 수가 있어서 실력을 올릴 수 있었다.
게임 중이거나 끝나고 나면 고쳐야 할 점들을 아내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더러는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보여주며 자세와 게임 요령을 시시때때로 바로잡아 주었다. 집에서 ○튜브를 보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같이 보거나, 아내에게 ○톡으로 보내 주기도 했다.
몇 년이 흐르고 게임 수가 늘어나면서 주변 사람들이 아내에게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테린이에 대한 일종의 격려나 예의라고나 할까. 클럽 회원들이 나에게는 “성공했네요.”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소소한 성공을 이루었다. 고생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서, 아내가 대견스러웠고 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테니스인들 중에서 부부가 함께하는 비율은 낮다. 통계자료는 없지만, 경험상으로 볼 때 5% 미만이 아닐까 싶다. 이들만이 상상했던 꿈을 이루고 테니스를 함께 즐긴다. 많은 테니스인들이 부부가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은 것이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지 말라.” 이 말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 남편들은 잘 알고 있는 말이다. 테니스도 그렇다고 보면 틀림없는 이야기다. 운전을 가르치는 것보다 테니스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아내의 실력이 점차 늘면서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도하는 것에 대해 갖은 이유를 들어 토를 달기 시작하더니 반발하기도 했다. 티격태격 부부다툼이 간간이 일어났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아내의 실력향상과 부부다툼은 정비례하는 것만 같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내는 내가 일일이 지적하는 것을 싫어했고, 나는 아내의 실력이 빨리 향상되지 않는 게 안타까웠다. 아내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라고 말했고, 나는 “아직도 그것밖에 못 치느냐.”라고 반박을 했다. 내가 아내의 잘못된 자세를 고쳐주려고 말하면, 아내는 “알고 있으니 말하지 말라.”라고 했다. 나는 “알면 뭐 해, 게임에서 활용을 해야지!”하면서 되받아 쳤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면 테니스장에 함께 나가고, 그렇게 아옹다옹 10년이 가까워 온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좋으시겠어요.”, “부부가 함께 테니스 치니 얼마나 좋아요.” 등등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지나 놓고 보니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우리 부부도 정말 다툼이 심했다. 국화부 아내를 둔 남편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투덕거리기도 하지만, 이제는 전처럼 심하게 다투지는 않는다.
아내는 테니스 재미에 흠뻑 빠졌다. 복식경기를 그런대로 잘하고 재미있어한다. 테니스 폼도 꽤 괜찮다는 말을 더러 듣는다. 테니스와 관련해서 아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많이 늘어났다. 보다 상수인 사람들과 난타를 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근처에 다른 테니스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처음 보는 중년남자 2명과 우리 부부가 게임을 했다. 아내와 내가 파트너로서 재미있는 게임을 했고, 더구나 게임을 이겼으니 내심 즐거웠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클럽이 둘로 갈라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아내가 회원가입하기 이전부터 클럽 내부에 갈등이 쌓여 있었다. 클럽 운영에 대해 전임 A회장과 현 B회장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있었고, 회원들도 편이 갈라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 가입한 회원 중에 이간질하는 회원이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12월 정기총회가 열리고 차년도 회장 선거가 있었다. 여기서 A회장이 차년도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B회장 측 회원들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날 저녁 회식자리에서 객기를 부리며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A회장은 차년도 임원을 새로 선임해야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아무도 임원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서 임원진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A회장은 B회장으로부터 회계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고, 영수증 조작과 회비 횡령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B회장 측 임원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회계자료를 세밀하게 검토하고 관련자들을 회칙에 따라 징계할 필요성이 거론되었으나, A회장은 임원도 없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만 했기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정기총회 때 처리 못한 회칙변경을, A회장이 다소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절차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B회장 측 회원들에게 클럽 탈퇴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에 중립적인 회원들은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B회장 측에서는 회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쪽으로 합류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A회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
기존 클럽에 남아 있던 아내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남아 있던 회원들도 하나 둘 테니스장에 나오지 않거나 B회장 측으로 옮기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든 클럽을 살려야만 했다. 아내는 자청해서 섭외이사 임무를 맡았다. 마지막에는 회원이 4명밖에 남지 않아 클럽이 와해되기 직전이라, 어떻게든 새로운 회원들을 섭외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온 아내가 너무 고생할 것만 같아서 나는 반대했지만, 아내의 의지가 분명해서 도와주었다.
그런데 아내는 섭외이사로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주변에 지인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회원가입이 어려운 사람들은 준회원으로 받아들였다. 테니장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찾아가 일일이 면담하면서 회원가입을 권유했고, 테니스 실력이 좋은 회원들을 특별회원으로 초대했다. 이렇게 모인 회원들이 어느새 2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테니스장에 자주 나오는 회원은 소수였기에 게임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 와중에 B회장 측 클럽의 행패가 이어졌다. 기존 클럽에서 탈퇴를 했으면 멀리 다른 장소나 코트로 이동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들은 기존 클럽에서 쓰던 코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남아있던 기존 회원들을 내쫓으려고 갖가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상식도 양심도 없는 행패는 근 1년 동안 10여 차례나 반복되었다.
아내는 1번 코트라도 지키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매일같이 테니스장에 나갔다. B회장 측 회원의 행패를 여자 혼자서 온몸으로 막아냈다. 가끔은 내가 나서서 아내를 도와주었다.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우리는 명분이 뚜렷하고 강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맞설 수가 있었다.
아내가 이렇게 코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동안, A회장은 자신의 게임만 즐기고 단 한 명의 신입회원도 섭외하지 못했다. B회장 측 행패에 맞서서 싸울 때는, 슬그머니 밖으로 도망갔다가 나중에서야 들어와서 모른척했다. A회장은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말뿐이었고, 회장이라는 자리에만 연연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코트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신입 회원들은 쉽게 나서지 못했고, 아내는 지쳐가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 보는 아내의 이런 모습이 일견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다가 또다시 연말 정기총회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클럽을 재정비하고 회칙도 새로 마련했다. 회칙에 따라 아내는 단독으로 회장에 출마하여 온라인 투표를 통해 70%가 넘는 지지를 얻었고 회장에 선임되었다. 새로운 회원 섭외와 코트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아내는 클럽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깊었기에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지려고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도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뒤에서 도와주었다.
회장 자리의 무게가 큰 것이었을까. 아내가 자주 테니스장에 나가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고 부상에 시달렸다. 양쪽 어깨와 무릎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들락거리고 있다. 약물치료·체외충격파·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한의원에 다녀오면 목과 어깨 주변 여기저기에 검붉은 멍투성이다. 집에서는 허구한 날 파스를 붙이고, 찜질팩으로 온찜질을 한다. 저녁이면 어깨를 주물러 달라 하고, 잠자고 나면 몸이 여기저기 쑤신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회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회원들의 친목과 ○톡 단톡에 일일이 신경을 쓴다. 테니스장에 자주 나오는 회원에게는 작은 선물이라도 전달하고, 자주 못 나오는 회원에게는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테니스장 전체의 화합을 위해서 타 클럽 행사에 찬조를 보내고 그들과도 친목을 도모한다. 책임감을 갖고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잘하고 있기에 내심 흐뭇하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으리라. 비록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겪더라도, 아내는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아내가 테니스를 즐기며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음 짓기를 바란다. 더구나 노후에도 테니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꿈을 이루었으니, 나로서는 아내에게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닌 게다. 테니스는 우리 부부 인생길에 커다란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