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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 percent Oct 15. 2023

아가야 우리 잠을 좀 자볼까?

응애 나 소아과인턴 -2

몇 연 곳이 없어 멀리서도 찾아오는 아기들이 많아 북적이는 소아 응급실과는 달리

수용인원이 정해져있는 병동을 담당하는 소아병동인턴은 비교적 널널한 일정을 소화한다. 


간밤에 아기는 별일이 없었는지, 보호자분은 잘 주무셨는지 병동 라운딩을 한바퀴 돌면

(아가는 다 나아가는데 보호자분이 과로로 아픈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불쌍한 보호자분들도 신경을 써주자)

어느덧 아침 회진 시간. 


앞서 말했든 소아응급실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이유가 '열(fever)'이기 때문에 

소아과는 fever chart라는 것을 작성하게 된다. 

아기의 체온을 그래프로 그리는 건데, 처음에는 이걸 대체 왜 하는건가 싶었지만 막상 그리고 나니 직관적이어서 보기가 좋더라. 

대충 저 빨간 동그라미 정도 오면 퇴원준비를 한다.  


아기가 슬슬 열이 36~37도 정도로 떨어지면 열에 아홉은 아침 회진 때 

"열 더 안나면 오늘 오후나 내일 아침 중에 갈게요~" 

말을 듣게 된다. 


그 정도가 되면 좀이 쑤시는 아가들은 물론이고 보호자분들도 빨리 병원을 탈출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오늘 가면 안될까요..? 하는 분들이 많다. 

그렇게 아가들을 한 명, 두 명 보내면 무사히 돌려보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차오른다. 


오후 회진까지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정규 처방을 내고, 아가들이 별 일 없는 지 오후에 한 번 더 라운딩을 돌고. 

그러다 가끔 병동에서 00이가 토를 해요~ 00이가 배가 아프대요~ 00이가 기침이 계속 나요~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하면서 일단 가본다. 

배를 좀 만져보고 숨소리를 좀 들어보고 하면서 아가 볼도 좀 찔러본다. 

검사를 하면 다행히 큰 문제가 있는 아가들은 드물다. (큰 문제가 있으면 인턴 선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빠르게 전공의 선생님에게 노티를 드리자.)

애기는 큰 문제 없어요~하고 약을 좀 주고 그 김에 아가 머리도 좀 쓰다듬어 주고 나오면 간혹 아가들이 저렇게 귀여운 선물을 하나씩 준다. 김영란 법에 걸리지 않는 정도로다가. 

종이접기한 거라던가, 본인이 아마도 안 먹는 간식. 물론 아끼는 간식을 준 걸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니까 귀엽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가고 밤이 되면 그때부터가 아가들과의 '진짜' 싸움이다. 

분명히 낮에도 잘 자던 아가들이 밤이 되면 잠을 안잔다...!

인턴이 아기들을 재우는 것도 아닌데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인턴이 아기들을 재워야 하는 게 맞아서..


경련을 하고 온 아기들 중에 몇은 MRI나 뇌파 검사를 한다. 요 두 검사는 1시간 정도 걸리고 움직이면 안되기 때문에 아가들을 재워서 검사실로 데리고 간다. 

포크랄이라는 물약을 맥여서 데리고 가는데.. 검사를 하러 가는걸 아는건지 순하던 아가들도 검사실에만 가면 귀신같이 일어난다. 

뇌파 검사실은 그래도 어둡고, 자장가도 틀고하는 잠-친화적인 공간이라 두번째 시도에서는 대부분 성공한다. 문제는 MRI 실이다. 

춥고, 밝고, 시끄러운 그 공간은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자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아기가 자지 않으면 아무도 자지 못한다. 

검사하시는 분도, 아기를 데리고 내려온 보호자도, 그리고 어느 소아과 인턴도.. 


그래서 이 모든 사람들은 합심하여 아기를 재운다. 

아가를 토닥이며 쉬--하거나 포크랄을 한번 더 맥여보거나 정 안되면 midzolam을 먹이기도 한다. 


그러다 정 안되는 아가들은 그날의 검사를 포기하고 다시 올려보낸다. 

병동으로 올라가 제 자리로 가면

귀신같이 잠드는 아가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나도 어렸을 때는 누군가 나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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