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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 percent Jan 21. 2024

7년을 평가하는 5분간의 면접

인턴시험 -3

#1. 인턴 시험

시험을 보고 나오는 길은 후련했다.

어떤 시험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그럼에도 결과가 안 좋다면..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인턴 시험의 결과는 이틀 정도 후에 개인별로 문자가 온다.

같은 과를 지원한 동기들이 모여있는 기숙사에서 업무 중에 나오는 시험 결과라니.

이리도 잔인할수가.


지원과 평균도 같이 보내준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그건 아무래도 헛소문이었던 모양으로 깔끔하게 본인의 성적만 문자로 온다.

내가 지망한 마이너과는 작년 최소컷이 50점 만점에 43점 정도였다고 선배에게 들었던지라

문자를 본 마음은 술렁였고 그 날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 날 평온하게 일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될지.



#2. 레지던트 면접 준비

면접은 시험을 보고 1주일 후에 치뤄진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면접 준비를 굳이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이틀간 들었다.


어차피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고

그런 생각을 가진 동기들과 상실감을 잊기 위해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어차피 그렇게까지 그 과를 가고 싶지는 않았어. 자기 합리화를 하며.


그러다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면접준비를 잘 하고 있냐고.

다른 병원을 돌고 있는 동기에게도 연락이 왔다.

면접준비 어떻게 하고 있냐고.


정신이 번쩍 들지는 않았고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살짝씩 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패배주의에 절여져 놀고 있으면 얻는 것은 5일간의 안락함 뿐이지만

면접준비를 열심히 하면 그래도 나중에 후회는 없으니까.

그리고 사실 나는 그 과를 가고 싶었다.


전공의 면접은 인성면접과 지성면접으로 나뉜다.

지금 와서 인성을 뜯어고칠 수는 없으니 준비할 수 있는 건 지성면접이다.

지성면접은 이렇게 화면에 문제 번호가 뜨면 번호를 골라서 나오는 문제를 대답하는 식으로,

일반적으로 공통문제와 지원한 과 문제 1개씩 나온다.

1주일 내 볼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통문제는 열심히 공부한 스스로를 믿고 지원과에 대한 개념 공부만 했다.



#3. 전공의 면접

대망의 면접날.

스스로를 완벽히 속여버린 건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해서일지 면접 당일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지성면접에서 쉬운 문제가 나왔고,

열심히 준비해간 30초 자기소개에서 강조한 차별점이 면접관들에게 어필이 되었다.

그 부분만 열심히 물어보신 걸 보니 흥미가 있으신 듯 했다.

인사를 드리며 나올 때 쯤에는 붙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 전공의 시험의 컷이 작년보다 낮아 내 점수가 그리 좌절할만한 점수는 아니었다.

거기서 포기하고 면접을 그냥 망쳐버렸다면 얼마나 후회했을지.


내 지원과는 면접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것 같았지만, 몇몇과에서는 면접이 정말 중요했다.

"지금 선생님 뽑을지말지 고민 중인데, 왜 뽑아야할지 설명해봐요."라고 물어보는 과도 있었고,

"나이가 많은데 잘 하실 수 있나요?"라는 식으로 단점으로 여겨질만한 일을 설명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본인만이 어필할 수 있는 특성을 잘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4. 합격자 발표

그렇게 후련한 마음으로 몇 주를 즐기다가 그 날이 왔다. 합격자 발표.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주마등처럼 지난 7년이 스쳐지나간다.


아무것도 몰랐던 예과 2년과

매주 졸음과 시험에 맞서 싸웠던 본과 2년

처음 가운을 입고 뿌듯함에 병원을 돌아다녔던 또 2년,

그리고 온갖 감정을 느끼고 소중한 사람들을 난 인턴 1년까지.


의대에 입학해서 보았던 시험과 쌓아왔던 평판과 해왔던 활동들이

지금 이렇게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뉜다는 생각에 나는 한동안 그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합격을 하지 못한다고 그 시간들이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이 속상할 것 같아서.

온갖 호들갑을 떨며 주위에게서 용기를 얻고 누른 결과는 합격이었다.


합격.

대학교 합격도 이보다 기쁘지는 않았는데.

안될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지금을 더 귀중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다가올 레지던트 1년차가 개화의 시간일지, 잠시 움츠러들어 있는 한 겨울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남은 기간 가장 행복할 인턴 생활을 알차게 즐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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