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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20. 2018

그것들 그만하고 얼른 공부나 해!




*우선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혹시나 하여 덧붙이지만, 아무것도 계획한 것 없이 막연하게 자신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조차(학생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임 같은 것들) 잊을 정도로 중독된 사람에 해당한다면, 밑의 이야기들을 보고 자신의 방법이 옳은 것이란 안일한 생각을 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 것’들 할 시간에 공부한다면 전교 1등은 떼놓은 당상이겠다.

그렇게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그런 것’들에 한눈팔다간 수능 끝나고 후회하는 거 아냐?

내가 대학입시 수험생으로 살면서, 수없이 많이 들은 말 중 하나였다. 나는 수험생 아닌 수험생으로 학년 내에 이름을 떨치던 학생이었다. 기숙사 컴퓨터를 새벽까지 마음껏 하기 위해 사감 선생님의 수면 패턴을 외운 뒤 밤새도록 전국 맛집 리뷰와 연예뉴스를 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탈락 위기의 연습생을 위해 친구들에게 투표를 부탁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기숙사에 있는 모든 컴퓨터로 동영상 조회 수를 올리려 예약종료까지 설정해서 열심히 공부 외의 활동들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렇다고 그 외 시간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공부하는 줄 알고 다가 가보면 나는 거의 십중팔구 일기를 쓰고 있었고, 항상 책가방에는 일기장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X 시간 X분의 공부시간보다는 손 그림과 스티커로 일기장을 가득 채웠고, 예쁘고 눈에 띄는 한 페이지를 위해 심하게는 한두 시간을 써가며 소위 말하는 ‘미친 듯이’ 일기를 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통에는 볼펜과 샤프 등의 필기구 대신 형형색색의 색칠용 펜들이 늘어났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일기장의 그림들은 더욱 화려하고 자세해졌다. 그렇게 공부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부 빼고 다 하는 나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저렇게, 말하곤 했다.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라, 수험생활 시절 공부 외의 다른 것에 빠져 있었더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흔하게 들었을 한 마디들이다. 게임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쇼핑,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까지 정말 많은 행동이 공부와 함께라면 ‘그것’이란 지칭으로 바뀌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자잘한 이야기들은 당사자에 대해 아쉬움, 안타까움 등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별 뜻 없는 지나가는 어투의 말일 수도 있으나, 언제나 타인들에게 우리의 ‘그런 것’은 공통으로 공부보다 덜 중요하고, ‘그런 것’을 위해 쓴 시간은 의미 없고 아까운 시간으로 보인다.



과연 그 모든 ‘그것’의 시간 하나하나가 공부 대신 하기엔 아깝고, 부질없기만 할까?


.

 대학에 가기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계적인 반복 학습에 따른 영양가 없는 교과수업에 억지로 발을 끼워 맞추어 걸어가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들은 ‘수능 끝나면 다 괜찮아진다, 힘든 건 잠깐일 뿐이다.’라는 허울뿐인 말들을 들으며 마음속에 억누르는 것이 옳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쌓이고, 더해지면서 학업과 시험으로 억눌러진 감정들이 더더욱 날카롭고 예리하게 날을 세우고, 이는 타인과 자신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변하면서, 언제 누군가에게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거듭난다. 공부 중 내는 볼펜 소리, 여태 것처럼 하던 시시콜콜한 농담들 등등 보통은 별생각 않고 지나가던 일상의 무언가조차도 예민해진 수험생들의 감정들은 마치 곧 쓰러질 것 같은 젠가와도 같아서 예상치 못한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이러한 위태위태한 수험생들에겐, 공부에 밀려서 뒤처진 채 소홀히 여겨지는 ‘그것’들이, 우리의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감정들을 잠재워주고, 오히려 우리에게 공부에 집중하게끔 하는 촉진제가 되어 준다.


 나의 경우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연예계 소식이 듣고 싶으면 그냥 (필자)에게 가서 물어봐라.’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릴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처럼 보였지만, 내가 원하는 학과에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는 정도의 성적을 받고, 그렇게 대학에 갔다. 이런 내가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던 건,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좋아서도, 운이 좋게도 내가 가려는 학과가 비인기학과여서도 아닌, 내가 ‘그것’들로 힘든 수험생활을 견뎌내었기에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기계적인 교과 커리큘럼에 발맞춰나가 대학을 가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고 혼자서 걸어가야 할 수험생활이 전혀 힘들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갑갑하고 보이지 않는, 그리고 외로운 길 속에서 혼자서 길에 딱 맞춰 걸어가는 것만이 옳은 것이라 외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최소한 숨통을 틀 수 있는 무언가는 있어야 걸어갈 시도라도 하지 않겠는가?



 공부만이 올바른 것이고, 공부와 상관이 없다고 무조건 잘못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바라봐주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수험생들도,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억지로 마음속 깊은 곳에 욱여넣으면서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힌다는 말처럼, 진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좀먹고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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