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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06. 2018

난 학교를 선택했'었'다.

학교와 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제 나이가 올해로 벌써 스물셋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 갓 2학년이 된 헌내기입니다. 주변에는 슬슬 졸업 준비에 바쁘거나 이미 전문대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남자 친구 중에서도 제대를 앞둔 친구들은 고작 두 세 명 뿐입니다. 대다수는 이미 복학생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스물둘에 입학한 중고 새내기였습니다.


  제가 재학한 고등학교는 독특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이지만 탐구 과목 4가지(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중에서 한 가지를 전공으로 삼고 두 가지를 부전공 삼아 총 3가지의 과목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생명과학 전공 반에 화학과 지구과학을 선택한, 한 마디로 생명과학을 좋아하는 물포자* 학생이었습니다. (물포자:물리 포기자)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물리는 단 한 페이지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생명과학을 좋아하면서 특이하게도 수학을 못 하고 국어를 월등히 잘하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진로도 생명과학과 생명공학, 단 두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 제게 엄청난 시련이 왔습니다. 2014년 8월, 저는 엄마를 모시고 3학년 교무실에서 수시 상담을 했습니다. 결과는 ‘수도권 내 대학에서 생명계열 학과 입학은 거의 불가능하다.’ 생명과학만을 꿈꾸던 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외동딸인 저를 먼 학교에 보내기 힘드셨던 부모님과 오로지 생명계열 학과만 꿈꾸던 저는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런 제게 담임선생님은 ‘차라리 학과를 포기하고 학교를 높게 쓰는 게 어떨까?’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당시 생명계열 학과의 입시 결과 보다 이외 공대 계열 학과의 입시 결과가 낮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공대를 추천하셨고, 저는 그렇게 기계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왕복 2시간 거리, 수도권에서 꽤 알려진 유명한 학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좋은 곳에 입학했다며 저를 축하할 때 저는 크게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제가 원하는 과가 아니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학과 커리큘럼 상 생명과학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1학년이기 때문에 교양과목에서도 생명과 관련된 수업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1주일에 세시간 3학점짜리 물리 수업은 외계어처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고, 어렵사리 이상한 3차원적 입체 모양을 만들었더니 가운데에 구멍을 뽕! 뚫어보라는 CAD 수업은 저를 너무나 지치게 했습니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이게 아닌데’, ‘나는 생명과학을 배우고 싶은데’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이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 학기도 마치지 못하고 중간고사가 끝난 5월, 학교에 자퇴서를 내게 됩니다.


 그 이후 저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수능 1등급이었던 생명과학과 지구과학, 국어 과목의 과외를 하면서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생명과학이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섣부른 결정을 내렸던 것은 아닐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제가 생명계열의 학과를 재학해서 배우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줄기세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저를 길러 주셨던 막내 이모께서는 지체 장애 1급이십니다. 후천적 질환으로 10대 시절 두 발이 안으로 굽어 신경이 눌려버렸고 이모가 그 이유로 더 걷지 못하셨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죽어버린 신경을 살릴 수 있는 기술, 그게 바로 줄기세포 기술이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제 인생의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이모를 보면서 제가 생명공학 연구원의 꿈을 키웠었다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순간 제 목표는 오직 하나, 생명공학 학과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저는 지금 생명공학 계열의 학과인 의생명공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제가 지금의 학교생활에 만족하며 충분히 행복한 이유는 제가 꿈꾸는 진로에 대한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수업들을 들으며 그 무엇보다도 제가 원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제가 모르는 내용은 책을 덮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빠르게 포기했었지만, 지금 제가 배우는 내용은 모두 제 진로와 꿈에 직결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모르는 내용은 인터넷과 논문을 찾아서 읽고 알고 배우고자 하는 집념이 생깁니다. 이러한 모든 이유는 제가 원하는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칼럼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함부로 진로에 대한 선택을 단언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인생 주체이자 선택권을 가진 하나의 개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나의 흥미가 내가 배울 전공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더 높은 만족도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낮은 전공-흥미 일치도는 현재 진로에서의 불안정성과 현재 진로에 대한 불만족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며(박명지, 2008, P.42) , 흥미와 유능 감이 모두 높을 경우 전공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와(김지원, 2017, P.48) , 전공-흥미 일치도에 따른 전공만족도는 동일유형일 경우에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조원숙, 2009, P.59) 존재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별다른 목표 없이 열심히만 달려왔던 제가 갑작스레 진로를 결정하고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앞에 참으로 막막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편입이나 전과, 복수 전공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할 것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학과의 만족도가 더 높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학교의 네임드를 더 우선시하는 사회의 시선 앞에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를 뒷전으로 둘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회의 시선들과 현실 앞에서 크게 쓴맛을 보았던 한 명의 수험생이었고 이제 고작 스물셋이 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여러분이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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